“최근 바이오 기업 임상시험 악재가 줄을 잇는데, 이번 기회에 프로젝트 관리와 선진화된 의사결정 프로세스 도입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동현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 원장은 올해 연이어 터진 바이오산업 악재가 성장통이 되기 위해서는 투자확대와 프로세스 혁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임상시험 역량 확보와 신약개발을 지원하는 정부 산하 기관인 만큼 연이은 악재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문제를 복기해 시행착오를 줄일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 원장은 “최근 논란이 있는 기업 임상시험 데이터를 직접 보지 못해 확언하지 못하지만, 임상 전문가도 이번 사태를 단순 실수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연구단계에서 임상시험 단계로 진입하면서 설계, 프로젝트 관리 등 전 영역에서 문제가 드러난다”고 진단했다.
올 초 코오롱생명과학은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 허가 과정에서 주성분 중 하나가 뒤바뀐 점이 드러나 허가 취소됐다. 이어 신라젠, 에이치비엘비 등은 임상시험 결과가 기대치를 밑돌았다. 헬릭스미스는 전체 임상시험 대상자 10% 이상에서 가짜약과 치료제가 혼용된 게 발견되면서 임상 3상을 다시하게 생겼다.
지 원장은 임상시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기준을 명확히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오·제약사 대부분이 임상시험을 수탁기관에 맡기는 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막기 위해 이들을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 바이오, 제약기업은 규모 등 한계 때문에 대규모 임상시험 인력을 고용하는 대신 수탁기관(CRO)에 맡기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제 의약품 임상시험 실시 기준(GCP)에 따르면 향후 CRO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도 의뢰자 책임이라고 명시한 만큼 관리하는데 투자를 늘여야한다”고 주장했다.
임상시험 설계과정에서도 단계마다 '고(Go) 앤드 스톱(Stop)'을 결정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 국내 산업계는 비교적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로, 소수가 임상시험 설계와 진행을 책임지기 때문에 정밀한 전략 수립이 어렵다는 게 지 원장의 주장이다.
신약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활용도 관건이다. 최근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대상자 선정·모집, 약효 예측 등 신약개발 전 영역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접목이 화두다. 기본은 양질 데이터 확보다. 국내는 연구개발 단계부터 상업화까지 전주기 디지털화는 물론 데이터 수집 체계도 미진하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쏟아진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연구에 재활용하는 인프라와 프로세스 구축이 필요하다.
지 원장은 “글로벌 제약사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최적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으로 기존보다 2주의 시간을 단축한데다 임상시험 참가자도 40% 가까이 줄이는 혁신을 보여준다”면서 “우리나라 제약사도 빅데이터나 AI에 관심은 높지만, 전담 부서도 없고 레퍼런스가 부족해 적용이 더디다”고 평가했다. 이어 “임상시험 과정에서 실패를 줄이고 신약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빅데이터 활용 신약개발 가이드라인 개발과 제약사의 적극적인 IT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IT 역량을 바탕으로 신약개발 솔루션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 수출하는 모델도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