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기술독립 실크로드' 현장을 가다 <Ⅲ>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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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정부는 올해 4월 21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발생한 부활절 폭탄 테러 당시 샹그릴라호텔을 공격한 자살 폭탄 테러범 자란 하심의 사망을 한 달여 만에 확정했다. 법원이 자한의 DNA 샘플과 그의 딸·아내 DNA 샘플 비교·분석을 명령한 데 따른 조치다. 이때 DNA 샘플을 비교·분석해 범죄자를 확정 지었던 기관은 스리랑카 법무부 산하 정부분석국(Government Analyst's Department, GAD)이었다.

비행기로 8시간 30분, 한국에서 5772㎞ 떨어진 스리랑카에 국내 과학수사 기법이 이식돼 뿌리 내리고 있다.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와 같이 현장에 남겨진 DNA나 디지털기기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증거 확인과 각종 범죄 적발에 상당한 역할을 하면서 대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코이카·국과수, GAD 과학수사 강화에 역량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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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술 전수를 통한 스리랑카 과학수사 역량강화 사업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했다. 스리랑카 법무부 산하 정부분석국 법과학부 디지털 증거분석실에서 직원들이 영상과 휴대폰 디지털 증거 분석을 하고 있다.콜롬보(스리랑카)=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GAD 과학수사 역량 강화 배경에는 한국이 있었다. 코이카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가 2015년부터 3년 동안 320만달러(약 38억원)를 들여 과학적 증거분석 역량을 끌어올렸다. 수혜기관은 스리랑카 법무부 산하 정부분석국인 GAD와 범죄수사국 CID다.

국과수가 기술용역 형태로 기술을 전수하고 인력 양성을 지원했다. 코이카는 관련 기자재와 시설 구축을 담당했다. 또 사업 전체를 총괄했다.

코이카 관계자는 “GAD는 스리랑카 정부 유일 범죄 수사·분석기관이지만 디지털 증거 분석과 유전자 분석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해당 분야 교육과 장비, 제도 지원으로 GAD 분석 능력을 향상시켜 법 보호 체계 신뢰성과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해당 사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영상과 생체 인식, 음석 분석, 문서 분석, DNA 분석, 디지털·사이버 포렌식 전문가를 3~6개월 파견해 현지 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어 GAD 디지털포렌식 3명, DNA 6명, CID 디지털포렌식 2명, 고위급 공무원 등을 한국에 초청해 국과수와 경찰대에서 국내 과학수사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코이카는 DNA와 디지털 관련 랩에 기자재 등을 제공했다. 이 사업 전에는 미국이 DNA 랩 등에 기자재를 지원했지만 기능 역량을 확보하기에 제한이 있었다. 실제로 DNA와 디지털증거분석 관련 랩에서는 대다수 장비가 코이카가 제공했다는 표식이 붙었다.

◇허울뿐인 과학수사, 분석까지 '세월아 네월아'

그간 스리랑카 과학수사는 속 빈 강정이었다. DNA 분야는 증거물 분석에만 평균 5~10년이 소요됐다. 또 분석에 관련된 실험 기법이 최신 방법이 아니었고, 인체에 해로운 유기용매를 이용해 DNA를 추출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 이들이 사용했던 유기 용매에 의한 DNA 추출은 혈액이나 구강 시료에서 DNA를 회수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장기간 인력 투입이 필요했다. 게다가 사건 현장 증거물 등 극도로 적은 양의 DNA로는 증거를 추출할 수 없어 세계적으로 거의 이용하지 않는 제한적인 방법이었다.

디지털 분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스리랑카 유일 포렌식 분석기관인 정부분석국에서 디지털 분석 업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분석 인력과 시설·기술 등 디지털 증거와 관련 제반 사항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영상, 음성, 생체, 디지털 분석이 가능한 IT 전공자도 부재했다.

이 때문에 디지털 분석을 할 때 콜롬보대학연구소 등에 분석을 의뢰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데이터 분석 기본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데이터를 복구해 법원 등에서 요구되는 분석 요청을 수행하지 못했다.

◇스리랑카에 뿌리내리는 국내 과학수사 역량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법이 스리랑카에 뿌리내리면서 글로벌 수준 역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우선 디지털과 유전자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다양한 감정분석 장비를 도입하고, 디지털 분야 실험실 리모델링을 통해 분석실을 확보함으로써 인프라를 확보했다. 또 GAD 내 디지털 포렌식과 유전자분석 시설 구축 및 CID 내 사이버범죄교육센터를 구축함으로써 최근 급증하는 온라인 범죄까지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전문인력 양성도 현지 위탁 교육, 국내 초청 연수, 현지 연수, 숙련도 평가 및 장비 숙련도 평가 등을 통해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스리랑카 법무부 검사 19명은 강원지방경찰청을 방문해 디지털 포렌식 및 과학수사 분석실, 사이버 수사대 등 시설을 견학하기도 했다.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디지털과 유전자 분야 감정량도 대폭 증가했다. 코이카에 따르면 디지털 분야는 2017년 2월 7일부터 3월 27일까지 이미지 포렌식 33건, 디지털포렌식 18건, 생체인식 6건 등 총 57건을 의뢰받기도 했다. 유전자 감정 처리도 2014년 73건에 불과했지만 2015년 169건, 2016년 457건을 기록하는 등 사업 시작 전보다 약 620% 증가하는 결과도 얻었다. 게다가 현재 월 100건 이상을 분석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추게 됐다.

GAD 관계자는 “한국 법의학은 잘 발달돼 있으며, 특히 디지털 분야는 첨단 기술을 사용해 분석 역량이 매우 높다”면서 “첨단 기술을 통해 분석역량으로 나온 디지털 증거는 정확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코이카는 스리랑카 GAD의 대한 과학수사 역량강화 사업이 스리랑카와 우호적 관계 형성과 향후 행정한류 수출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코이카 관계자는 “법과학 발전을 통한 스리랑카 국민 사법시스템 신뢰 회복과 현지 경제발전 가속화를 위한 사회적 안정화에 기여하게 돼 기쁘다”면서 “한국 선진 법과학 기술, 개발경험 공유를 통한 양국 사법체계에서 우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됐으며, 향후 굿 거버넌스(국가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정치, 경제 및 행정에서 권력기관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 분야에서 행정한류 수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창간기획]'기술독립 실크로드' 현장을 가다 <Ⅲ>스리랑카

콜롬보(스리랑카)=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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