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日, 수출 규제 한달만에 포토레지스트 삼성향 수출 허가...협상 제스처? 국제사회 생색용?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한달 만에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와 에칭가스의 국내 업체 공급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 생색용이라는 의견과 일본이 한발 물러선 것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업계는 일본의 의중을 판단할 수 없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향한 수출 제한 조치 속도를 조절하면서 우리 정부도 맞대응에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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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업계와 일본 외신 매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3대 품목의 수출 규제를 시작한 지 35일 만에 EUV 포토레지스트와 에칭가스를 수출한다. 두 소재 모두 삼성전자로 수급된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삼성전자 EUV 공정이 도입된 화성사업장, 에칭가스는 중국 시안 공장으로 각각 향할 공산이 크다.

EUV 포토레지스트와 에칭가스는 반도체 공정에서 필수 소재다. 일본 기업들이 다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급소'를 찌른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지난달 초 심사 기간을 90일이라고 명시했다. 7월 초부터 소재 수출에 제동을 걸면 9월 이후에나 한국으로 수급이 가능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로워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수출 허가가 나면서 업계는 '우선은 한숨 돌렸다'는 분위기다. 다만 일본의 의중 파악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업계에서는 국산화 움직임으로 일본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는 주장이 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국내에서 국산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갈 것이라는 분석이 일본 정부에 전해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EUV 포토레지스트 시장 물량의 90%는 일본이 생산하지만 30~40%는 한국에서 소비된다는 점을 고려해 일본 기업을 보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이 당초 계획을 조정하면서 오히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협의를 하자고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는 소재·부품 국산화에 반응했다기보다 일본 측이 자국의 명분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반면에 일본의 노림수가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면서 “수출 규제를 완화할 거면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조치 철회까지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외적으로는 수출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쌓으면서 속으론 한국 태도에 따라 규제를 조이거나 풀 마음을 먹고 있을 것”이라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주장이 엇갈리지만 사태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은 대체로 동일하다. 한 장비업체 관계자는 “한 번의 규제 완화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규제 품목 추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규제가 완화된다고 해서 국산화가 유야무야되면 미래에 똑같은 일을 또 당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의 속도 조절에 맞춰 사태를 지켜보며 숨을 고르는 상황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수출 승인에 관해 “일본이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 이에 대한 대응 카드로 일부 제품은 허용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한국에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주려는, 즉 무역보복이 아니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조치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을 유보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8일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전략물자수출입 고시 개정에 대해 논의했지만 세부 내용이나 시행 수준과 시기에 대해서는 조율이 필요하다고 결론냈다”면서 “최종 발표안과 입법 예고 시기는 추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국 갈등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틈을 타 우리나라가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등 맞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것은) 맞대응으로 가겠다는 것인데 실제 시행할 경우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는) 국제사회 여론전을 펼치는 데 자충수가 될 수 있다”면서 “백색국가 배제 조치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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