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에 이어 신라젠까지 K-바이오 의약품이 연이어 글로벌 임상 3상 관문을 넘지 못했다. 글로벌 바이오 신약 출시에 험로가 이어지면서 임상시험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접근법과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막연히 글로벌 임상시험을 추구하기보다는 정교한 임상 설계와 역량 내재화가 절실하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발표가 예정되던 바이오 의약품 4개 가운데 2개가 사실상 임상에 실패했다. 올해 말쯤 나머지 2개 의약품도 임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있지만 이보다 앞선 연이은 임상 실패로 막대한 후폭풍이 예고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발표가 예정된 것은 △에이치엘비 경구용 항암 신약 '리보세라닙' △신라젠 항암 바이러스 '펙사벡'(무용성 평가) △헬릭스미스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VM2020' △메지온 선천성 심장질환 치료제 '유데나필' 등 네 개다. 바이오시밀러 외에 글로벌 허가를 받은 바이오의약품이 전무한 상황에서 상업화 직전 단계 결과 발표라는 점에서 업계가 고무됐다.
결과적으로 네 개 가운데 두 개는 사실상 실패했다. 가장 먼저 에이치엘비는 리보세라닙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가운데 전체 생존 기간이 최종 임상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올해 안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신청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면서 글로벌 임상 3상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신라젠도 미국 독립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펙사벡 임상 3상 중단 권고를 받으면서 조기 종료했다. 이 역시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투여에서 효능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서 의약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봤다.
조만간 결과 발표를 앞둔 곳은 이제 헬릭스미스와 메지온 두 곳이다. 헬릭스미스는 이르면 다음 달, 메지온은 연말쯤 발표가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연이은 임상 실패에 비춰볼 때 국내 바이오 기업의 임상시험 접근법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개별기업 실패 사례라기보다는 상업화 단계에 이른 'K-바이오'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삼아 임상 디자인부터 환자 모집 등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그동안 국내 바이오 기업은 기술력이 축적되면서 막연하게 글로벌 임상시험 후 허가만을 생각했다”면서 “결국 글로벌 임상시험수탁기관(CRO)에 임상시험을 모두 맡기면서 물질 허가 여부만 따졌지만 이제는 최적 약효를 제시할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정교한 임상 설계 역량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글로벌 임상 3상을 통과한 국산 바이오의약품은 바이오시밀러 외에 없다. 여전히 많은 바이오 기업이 임상시험 단계에 있지만 대부분 CRO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 임상은 다국적 CRO를 통해 진행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한국 바이오 기업은 다국적 제약사에 밀려 우선순위에서 처진다. 결국 후보물질 우수성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약물을 가장 잘 아는 회사 스스로 임상 설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신라젠 펙사벡도 면역 항암제와의 병용 투여에서 데이터가 잘 나오지 않아 임상을 조기 종료했다. 만약 환자군과 질병, 병용 투여 약품 등을 좀 더 정교하게 설정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면서 “이번 사례를 계기로 국내 바이오 기업도 막연하거나 쉽게 생각해 온 임상시험 전 과정을 돌이켜보고 자체 역량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