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수출을 전방위로 통제하면서 우리나라 로봇 산업을 정조준할 수 있다는 불안함이 커졌다. 로봇 부품·단품 중 상당 부분 일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출 제한 시 국내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특히 일본이 세계 시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감속기 수출 제한 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업계는 중국을 대상으로 대체품 찾기에 나섰다.
14일 로봇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로봇 분야 수출을 제한할 시 타격받는 분야는 '감속기'로 꼽힌다. 감속기는 기어를 활용해 속도를 떨어뜨리는 기구로 로봇 움직임을 조절하는 데 활용된다. 정밀도를 갖추고 고하중을 견뎌야 하는 산업용 로봇에서 주로 활용된다. 최근에는 특히 사람과 같은 작업대에서 일해야 하는 협동로봇에서 감속기를 주요 부품으로 활용한다.
로봇에서 활용하는 감속기는 작고 가볍고 정밀한 '하모닉 드라이브'와 정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크지만 튼튼하고 힘이 좋은 '사이클로이드 드라이브(RV)' 감속기로 나뉜다. 두 유형 제품 모두 일본 업체가 세계 시장 절반 넘게 점유하는 '반독점'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큐와이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세계 하모닉 드라이브 시장은 일본 HDS가 73.3%를 차지했고, 이어 일본 니덱-심포가 11.2%, 중국 리더드라이브가 11.1%로 뒤를 이었다. 로봇 업계는 지금도 일본 업체가 여전히 하모닉 드라이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본다. 또 사이클로이드 드라이브 시장도 일본 나브테스코가 세계 시장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세계 감속기 시장은 일본이 사실상 반독점한다”면서 “유럽에도 성능으로는 일부 대체할 만한 회사가 있지만 가격 면에서 일본 회사가 우수하다”고 밝혔다.
감속기는 최근 세계 로봇 산업이 성장하면서 가뜩이나 부품 수급이 어려웠다. 로봇 업계에서 일본산 감속기 부품을 구하려면 3~9개월 납기를 기다려야 한다. 반독점 시장 특성상 기존에도 우리 로봇 업체가 일본 업체에 철저한 '을'이었다.
로봇업계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로봇 업계는 사실상 일본 하모닉드라이브, 심포 제품에 의존한다”면서 “그마저도 물량이 부족해 사전에 비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이 감속기까지 수출을 제한하면 로봇업계는 넋놓고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이다.
로봇업계 다른 관계자는 “일본산 감속기 수준 신뢰성과 품질을 보여주는 대체품을 찾기가 어렵고, 섣불리 대체품을 채택했다가 고객사에 문제라도 생기면 더 큰일이 난다”면서 “자칫하면 업계가 감속기 수급 대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로봇 산업 전체가 일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감속기 같은 '아킬레스건'이 또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가 조사한 '2017 로봇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로봇 단품·부품 수입액 7450억원 중 3918억원(약 52.6%)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제조업용 로봇으로만 한정하면 전체 수입액 4621억원 중 3148억원(약 68.1%)을 일본이 차지했다. 현재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관련 업계에서도 일본 수출 제한 소식에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로봇업체는 감속기를 대체하기 위해 중국 리더드라이브 등 부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달리 로봇 분야에서는 아직 일본이 명시적으로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밝히지 않았지만 수출이 통제될 때에는 타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로봇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감속기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어 업계와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업계에서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