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의 대 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한 데 이어 규제 품목 확대 가능성이 지속 언급되면서 일본 장비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서 일부 일본산 장비가 시장을 독점했거나 독점하다시피 한 핵심 공정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장비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규제가 장비 분야로 확산될 공산은 낮다고 보면서도 불투명해진 시장 환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0일 국내외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주요 장비 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규제 강화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혹시라도 추가 규제 대상으로 장비가 지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자가 위축되는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반도체·디스플레이 투자가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규제 여파로 새로운 투자 기회마저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어 걱정이 커졌다.
미국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 전시회 세미콘웨스트에 참여한 한 기업인은 “현지에서 미팅한 일본 장비 기업들 대부분이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 여파를 우려하고 있었다”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공정에 사용하는 일본 장비 비중이 높아 혹시라도 장비 수출 규제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일본 장비업체 관계자들은 수출 규제 품목이 장비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장비 완성품 한 대를 생산하는데 철강과 부분품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다수 기업이 협업해 소재보다 훨씬 파급력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수출 규제가 전방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한 일본 장비업체 관계자는 “중국의 6세대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도 길어 봐야 3년 후에는 마무리 단계이고, 중국 반도체 투자도 미국 견제로 막혀 실질적인 사업 기회는 사실상 한국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가뜩이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반도체 투자가 줄어 어려운 상황인데 투자 기조가 더 위축되면 반도체 생태계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만약 장비가 규제 품목으로 지정되면 해외 생산법인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당장 수출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수출 규제 여파로 전방기업 투자가 위축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가 투자하는 OLED의 경우 증착기와 노광기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한다. 특히 6세대 증착기는 국내 업체인 선익시스템이 양산에 성공했지만 일본 캐논도키 입지가 여전히 강력하다. 노광기는 일본 니콘과 캐논이 시장을 장악했으며, 국내 제조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7년 9월 기준 한국이 수입하는 전체 디스플레이 장비 가운데 일본 수입 비중은 62%에 달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장비 가운데 50.1%가 OLED 증착기, 38.2%가 박막트랜지스터(TFT) 공정에 쓰는 노광기로 각각 나타났다. 또 지난해 반도체 제조용 장비 전체 수입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33.8%였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