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생명, 보존과 변이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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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말했다. '라이프(Life)'가 인생과 생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내고 있듯 생명과학자인 나에게는 그 말이 달리 해석된다. 생명은 보존과 변이의 연속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생명을 이어 간다. 생존에 대한 노력은 심지어 세포 수준에서도 계속된다. 대표 현상이 바로 DNA 복구 작용이다. DNA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종의 염기를 포함하는 뉴클레오티드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염기 서열 배열에 따라 천문학 규모의 유전 정보를 보유할 수 있다. DNA 유전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단백질은 세포의 정상 기능을 돕고, 다양한 세포는 하나의 생명체인 개체를 구성한다. DNA와 그 유전 정보를 유지하는 것이 생명체에 매우 중요한 이유다.

안타깝게도 모든 생명체의 DNA는 자외선, 화학물질, 방사선 등 외부 자극과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에 의해 끊임없이 손상된다. 훼손된 DNA로 인해 유전 정보도 변한다. 하나의 뉴클레오티드 변이부터 다량의 DNA 염기서열 손실까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돌연변이라 한다.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 정보 변화는 생명체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필수 단백질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 생명체의 생존 유지를 위협하기도 한다.

다행히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는 DNA 손상에 따른 돌연변이를 정상 상태로 복원해 주는 DNA 복구 기능이 있다. DNA를 훼손시키는 방법이 다양하듯 손상된 DNA를 정상 상태로 수리해주는 기작 역시 다양하다. 하나의 염기 서열에 문제가 있을 때 손상을 수리하는 염기절단복구, 자외선 노출에 의한 DNA 훼손을 바로잡아 주는 뉴클레오티드절단복구, 방사선에 의한 DNA 절단 손상을 복구하는 이중가닥절단복구 등 생명체는 다양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자신의 DNA를 수호할 준비를 철저히 갖추고 있다.

생명체의 생존과 더불어 DNA 복구 기능은 인류의 질병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기작이다. 다양한 임상 및 기초 연구는 DNA 복구 기능이 유전병, 암, 노화 현상과 깊게 관련돼 있음을 밝혀 왔다. 특히 암 연구에서 DNA 복구와 이를 통한 유전체 보존 기능은 큰 축을 차지한다. 이 같은 중요성을 증명하듯 2015년 노벨화학상은 염기절단복구, 뉴클레오티드절단복구, 불일치복구 현상을 연구한 3명의 과학자에게 주어졌다.

가까이 보면 DNA 복구 기능 저하로 생기는 돌연변이가 하나의 개체에는 여러 질병을 발생시키는 비극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변이는 멀리서 보면 여러 개체의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필수불가결 조건이기도 하다. DNA 변이로 인한 유전 정보 변화는 생명체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유전 형질을 만드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개체군 내 생물의 다양성 증가는 그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의 급박한 변화에도 개체군이 생존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높인다. 개개의 개체는 유전 정보를 지켜 생존하려는 반면에 개체군 수준에서는 변이를 통해 다양성을 증가시켜 생존에 힘을 쓰는 것이다.

생명체는 다른 개체와 경쟁뿐만 아니라 시·공간의 여러 변수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려 노력한다. 고유한 유전 정보를 지키면서 동시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유전변이를 통해 다양한 유전 형질 개체군을 형성한다. 그 연속된 과정 속에서 생존에 가장 적합한 종만이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 간다. 생명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전 정보의 보존과 변이를 거듭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미래에도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계속될 것이다.

이윤성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연구위원 yoonsunglee@ib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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