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코드 <6>리처드 브랜슨-오! 즐거운 인생
한 사내가 다리털을 밀고 화장을 했다. 여자 승무원 차림으로 기내서비스를 한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다. 팬티 차림은 예사다. 망측한 누드 사진도 광고지에 실었다. 점잖은 우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넥타이를 매고 폼 나는 책상을 앞에 두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신부화장을 하거나 콜라 모형을 뒤집어쓴 채 거리로 나선다. “내 사업은 멋진 신사복을 입는 것이나 주주를 즐겁게 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주주를 무시하다니. 막 나가도 정도껏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단 한 번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 적이 없단다. 즐겁게 일을 하니 돈이 따라왔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댄다. 직장생활 안 해본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 한술 더 떠서 “우린 퇴근 후 재미를 찾으려하는데 왜 직장에서 재밌으면 안 되는가?”라고 묻는다. 직원에게는 그의 말이 '딴 맘' 먹지 말고 열심히, 즐겁게 일하란 소리로 들린다. 듣는 월급쟁이 입에서 욕이 나온다. '당신 회사니까 일하는 게 재미있겠지.'
그는 이른바 문어발 경영인이다. 계열사 수백 개를 거느렸다. 레코드 회사를 시작으로 항공, 열차, 음료, 미디어, 헬스사업까지 손을 댔다. 전문 분야도 없다. 우리나라라면 대표적인 기업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됐을 터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변태짓'을 하고, 별별 사업 다 건드리는 마당에 관계당국이 그냥 둘리 없다.
버진레코드의 탄생스토리가 흥미롭다. 직원들과 술을 마시다 나온 아이디어로 레코드사를 차렸다. 그날 술자리 주제는 “왜 음반사는 천재음악가 마이크 올드필드를 못 알아보는 거지?”였다. 버진레코드가 만들어낸 마이크 올드필드 앨범 '튜블러 벨스'는 5년간, 영국에서만 200만장이 넘게 팔렸다. 버진레코드 매각할 때 가치는 10억달러였다. 10억달러짜리 즐겁고 유쾌한 술자리였던 것이다.
저비용 항공사를 차렸다. 저가라고 서비스까지 싼 게 아니었다. 비치된 물품과 서비스는 만족스러웠다. 승객들이 버진 로고가 찍힌 예쁜 양념통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후 양념통 바닥엔 '버진애틀랜틱에서 슬쩍 해 온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슬쩍하는 재미는 기념품이 됐다.
대법관 출신 할아버지와 변호사 아버지를 둔 집 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난독증이 심해 정규 학습 과정을 이수할 수 없었다. 재무제표 읽을 줄도 모르고 순이익과 총이익 차이도 몰랐다. 대신 뚜렷한 철학이 있다. “사람은 걷는 규칙을 배워서 걷지 않는다. 걸음을 시도하고 넘어지면서 배운다”는. 사업 규칙도 비결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믿었으며 열심히 즐기려했을 뿐이다.
괴짜 기행은 전략이다. 브랜슨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도전하고 모험하며 즐겁게 사는 인생, 그것이 사업 전략이다. 학력, 성공 기준 같은 건 필요 없다. 나체로 건물에서 뛰어 내리고 탱크를 몰고 뉴욕 한복판에서 자신의 경쟁사 광고판을 폭파할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버진의 영어 의미는 '숫처녀'다. 사업 초창기 '시작해 본 적이 없는' 초짜들이 모였다 해서 회사명을 버진으로 했다. 2017년, 일론 머스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캡슐형 음속열차 하이퍼루프에 브랜슨이 돈을 보탰다. '버진하이퍼루프원'. 서울서 부산까지 16분이면 도착한다. 도전으로, 모험으로 일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그의 인생이 버진스럽다.
박선경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