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그런 거라면 비웃음 받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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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자의 최고 관심사는 세계보건기구(WHO) 5월 총회다. 게임장애 국제질병분류 등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조급한 거 같다.

한국 정신의학계는 열렬한 지지까지는 아니지만 찬성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운 듯하다. 게임장애가 정신질환으로 규정되면 진료비 청구와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게 된다. 정신의학계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질병화가 되면 바로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통계청이 2025년까지 반영이 어렵다고 말한 사실을 정면으로 뒤집은 발언이지만 관계자나 부처는 딱히 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게임장애 등재가 문제가 되는 건 학문적으로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장애 요인이라면 치료와 상담 대상이 돼야겠지만 깊은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섣부른 결정은 위험성이 다분하다.

기자라는 보호막이 있는 덕분에 의사들을 찾아 여기저기 묻고 다닐 수 있었다. 의사들은 게임장애에 반대하지만 학회에 반하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기 부담스러워 했다. 질병 분류에 포함되는 것이 왜 문제인지 반문하는 의사도 있었다. 이미 자신이 게임에 중독돼 판단력을 잃었다는 의사도 있었다. 반대 의견을 철회한 의사도 존재했다.

답답한 마음에 20년 가까이 봐 온 의사에게 넋두리했더니 “왜 그걸 네가 찾으러 다니냐”면서 “해외 주류, 담배 업체가 막대한 돈을 써서 유리한 연구 보고서를 만드는 이유가 뭔가. 정계에 알게 모르게 로비를 하는 이유가 뭐냐”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머쓱해졌다. 게임 산업을 전혀 모르는 의사가 너무나 당연하고도 너무나 어이없다는 듯이 던진 이 한마디가 뇌리를 후려쳤다.

업계는 너무 진중하다. 유리한 방어 논리를 만드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도, 정부 산하 기관이 준비를 하거나 인문·사회·심리학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도 아주 조금씩만 움직였다. 오히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사실상 방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중에 질병으로 분류돼 게임중독세를 거둔다고 할 때 '수출 첨병' 대접이 소홀하다고 푸념해도 때는 늦다.

게임장애 등재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뛰는 사람이 많다. 기업이 부디 나와 같은 사람을 머쓱하지 않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모르게 이미 준비하고 있어서 이 기사를 읽으며 비웃고 있거나. 그런 거라면 비웃음 받아도 좋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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