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하면서 '기업 지불능력'을 제외하자 경제계와 소상공인은 일제히 유감을 표시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가 27일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에 따르면 전문가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가 최저임금 상·하한을 설정하면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가 그 범위 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구간설정위원이 노·사 협상을 제한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여기에는 기존 최저임금위 논의가 노·사 중심 교섭으로 진행돼 과도한 갈등과 파행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앞으로 최저임금은 전문가가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설정한 구간 범위 내에서 심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기존 노·사 교섭 방식의 갈등 구조가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전문가가 얼마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다. 구간설정위 전문가가 노·사 대리인 역할을 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전문가가 이념적으로는 얼마든지 어느 한 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개편안은 노·사·정이 전문가를 5명씩 추천하고 노·사가 이들 중 3명씩 순차 배제해 9명으로 구간설정위를 구성하도록 했다. 구간설정위 전문가들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최저임금 상·하한 폭을 지나치게 크게 설정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구간 설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결정위원회 공익위원 7명 중 4명을 국회의 추천을 받아 위촉하기로 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논의가 국회 개입으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 시행 첫해인 1988년 이후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하는 공익위원 구성에 국회 추천 방식을 도입한 것은 처음이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서 '기업 지불능력'을 제외키로 한 것에 대한 경영계와 소상공인은 즉각 반발했다. 정부는 노동계 요청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에서 이 항목을 제외했다.
노동계는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 생활 보장이라는 최저임금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데다 사업주 무능력에 따른 경영난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셈이라며 반대했다.
이와 관련 경영자총협회·대한상의·중소기업중앙회·무역협회·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계는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에 대한 입장' 자료를 통해 “정부안 중 결정기준에서 논의 초안에 포함됐던 기업 지불능력을 제외하고, 결정위원회 공익위원 추천시 노사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는 반드시 수정·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논평을 통해 '기업 지불능력' 제외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온나라의 관심이 북미 정상회담에 쏠려있는 이때, 이제와서 슬그머니 말을 뒤집은 고용노동부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기업의 지불능력이 반드시 산입돼야 이를 바탕으로 업종별, 기업 규모별 등 최저임금 차등화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라며 “이를 제외한 것은 소상공인연합회가 강력히 주장해온 최저임금 차등화 방안을 향후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도 배제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제계는 또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정부 책임 강화를 주문했다. 경제계는 “관련 제도가 시행된 이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라며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임금안에 대한 정부 검토의견 제시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제도운용 뿐만 아니라 결정과정에서도 정부의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