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한전 소송, 장고 끝 판결 났지만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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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DB

SAP와 한국전력공사 간 소프트웨어(SW) 관련 국제 분쟁 소송이 2년 반만에 판결났다. 판결문에 대한 양사 간 해석은 다르다. 판결대로 한전이 SAP에 SW 사용관련 자료 제공를 제공할지도 쟁점이다. SAP가 자료를 받지 못할 경우 추가 재판도 불가피하다. 장시간 끝에 판결은 났지만 양사 간 다툼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이 판결한 주 내용은 두 가지다. 이에 따라 양사 판결 해석이 나뉜다.

우선 법원은 한전이 보유한 SAP 전사자원관리(ERP) 사용 자료를 SAP측에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SAP가 이번 재판을 진행한 이유는 한전 ERP 사용 자료를 받기 위해서다. SAP는 한전과 ERP 계약 체결 후 10년간 한전 EPR 현황 자료를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SAP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전이 SW를 적법하게 사용하는지 여부를 확인 한다. 한전이 계약 당시보다 더 많은 SW를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불법SW 사용에 대한 추가 비용 청구가 가능하다. 한전은 기존 계약 등을 이유로 자료를 넘지 않았다. 법원 판결로 SAP는 재판 청구 당시 요구했던 자료를 받는다. 이 관점에서 SAP가 재판에서 승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법원은 한전이 보유한 SAP ERP 제품이 등급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하다고 판결했다. 당초 SAP는 한전이 기존 계약 버전보다 10배 가량 비싼 프로페셔널 버전을 전 직원이 사용한다고 추정했다. 한전은 계약 당시 모든 버전(등급)을 쓸 수 있는 계약을 했다고 주장했다. 프로페셔널 버전 사용이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이 부분에서 한전 손을 들었다. 한전은 등급 관계 없이 전 버전을 사용 가능하다는 판결을 받아 이번 재판에서 승소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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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년 반 만에 첫 판결이 나왔지만 법정 다툼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판결 결과 이행과 이에 따른 후속 조치와 양사 간 조정이 남았다.

법원은 SAP와 한전 ERP 계약 당사자를 한전이 아니라 한전 KDN으로 판결했다. 한전KDN에게 한 달 내 한전 ERP 사용 자료를 SAP에 전달하라고 주문했다. 한전KDN이 자료를 전달할지가 미지수다.

한전 입장에서 모든 등급에 관계 없이 ERP 사용이 가능하다고 판결 받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ERP는 회계부터 기업 내 주요 정보가 담긴 자료를 포함한다. 기업 정보 보안 상 쉽게 내어줄 자료가 아니다. 한전이 한전KDN측에 보안상을 이유로 자료 공유를 거부하면 한전KDN은 기한 내 SAP 측에 자료 전달이 어렵다.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법원 제재나 추가 분쟁이 발생한다.

재판이 종결된 것도 아니다. 법원은 이번 재판에서 한전 ERP 사용 인원 추가 발생에 대한 부분 판결을 다음 재판으로 넘겼다. 재판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추가 재판에서 법원은 한전 ERP 적법 사용 인원을 판결한다. SAP는 계약 당시 한전 직원 1만9000여명에게 ERP 사용 권한을 부여했다. 최근 한전 직원이 2만 여명을 넘어서면서 이에 대한 추가 ERP 사용 비용 청구 여부를 법원이 결정한다. 법원이 2단계 재판에서 추가 사용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라고 판결하면 상응하는 금액을 SAP에 지불해야 한다. 이 역시 법원이 이행 주체를 한전KDN으로 정했기 때문에 한전KDN이 한전으로부터 금액을 받아 집행하거나 한전KDN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양사 분쟁이 추가 법정 다툼까지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전은 현재 차세대 ERP 도입을 위한 프로세스혁신(PI) 사업을 진행 중이다. PI 결과에 따라 현재 사용 중인 SAP ERP 고도화 또는 다른 EPR 도입 등 방향을 결정한다. 차세대 ERP 규모만 3000억원대다. SAP 입장에서 한전 차세대 ERP는 큰 시장이다. SAP가 한전 차세대 ERP를 염두에 두고 소송 등을 취하할 가능성도 있다. SAP는 지난해 한전과 유사하게 진행한 KT와 법정 분쟁을 취하했다. 당시 SAP는 KT가 유지보수관리 서비스 전체를 해지하려하자 이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법원이 판결을 내렸지만 어느 한 쪽이 승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추후 양사 움직임을 계속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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