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틸리티 산업 대표주자 에너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대전환 중이다. 발전설비 효율은 높아지고 운영도 쉬워졌다. 신재생에너지와 ICT 만남으로 전통 에너지 기업이 아니어도 소규모 발전사업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발전 단위가 지금보다 작아지면서 사업기회가 늘어난다. 석유·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은 물론, TV·통신·유통 등 다른 분야와 융합도 예상된다. 전력망과 서비스는 지금보다 더 복잡해진다. 개인 선택에 따라 이익을 볼 수도, 반대로 손해를 볼 수 있다.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는 무엇보다 컨설팅 역할이 중요하다.
◇양방향 에너지 시장
20XX년 에너지 프로슈머를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내 전력시장이 급변했다. 전력판매시장에 한국전력 이외 판매기업이 등장했다. 일부 발전사는 지자체 및 인근 지역 개인고객을 찾아다니며 한전이 아닌 다른 고객에게 판매했다.
일찌감치 태양광 설비를 마련하고 국민 수요관리(DR) 사업을 시작한 A씨는 부업으로 동네 주민에게 전력을 팔고 있다. B사는 이동통신·IPTV·인터넷 그리고 에너지 효율화 서비스까지 묶은 결합상품을 선보이고 가입혜택으로 전기요금 할인을 포함했다. 구인·구직사이트에는 신재생 에너지 관리 지역 에너지 계통 운영, 가정과 회사 에너지 이동 현황을 파악하고 최적의 설계를 하는 에너지 컨설팅 전문가 모집으로 가득 차 있다.
곧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다. 전력시장 전체가 위 사례처럼 급속하게 바뀌기는 힘들지만, 시장 개방과 다양한 서비스 융합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구상 중이다. 해외에선 이미 선보인 사례다. 인터넷 등장 당시 미디어 시장이 단방향에서 양방향 콘텐츠 서비스로 진화했듯, 전력시장도 양방향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전력시장은 에너지 사업자가 전력을 생산해 송배전망을 거쳐 고객에게 공급하는 일방향 방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발전사가 전력을 생산하면 이를 한국전력이 사들이고 송배전망을 거쳐 공장과 기업·상가·가정에 보내는 방식이다. 고객은 전력을 받을 수만 있다. 이를 다시 되돌려 보내거나 다른 고객한테 되파는 행위는 할 수 없다.
이 같은 구조는 재생에너지 등장과 함께 무너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원전·석탄화력처럼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진 못하지만, 반대로 대규모 투자가 없어 진입장벽은 매우 낮다. 중소기업은 물론 지역조합, 일반 개인도 신재생 발전 사업으로 진출 중이다. 절전노력을 발전량으로 인정해 전력감축량을 사고파는 수요관리(DR)사업도 마찬가지다. ICT를 통해 다수 회원사 절전량을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중소기업이 시장에 참여한다. 최근 시범사업 중인 국민DR는 전력시장 참여 주체를 더욱 세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이 독점 판매사업자로 있는 현재로선 다수가 참여하는 시장 변화가 어색하지만, 해외에서는 전력과 ICT 융합 동향이 두드러지면서 현실로 다가온 일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많은 소규모 발전소를 ICT로 묶어 하나의 대용량 설비로 운영하는 가상발전소, 개인 간 전력공유사업이 정착했다. 일본 역시 전력 소매시장 자유화에 따라 전력과 타 에너지와의 결합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매원스톱서비스, 소매포인트 서비스 등이 확대 중이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분산전원모델 등장을 넘어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에너지관리 사업, 소비자 서비스 등 신규 비즈니스 가능성이 제기된다.
◇분산전원·프로슈머시대, '에너지 컨설팅' 필수
최근 안산 시화호에 100㎿ 규모 수상태양광을 건설하기 위한 발전사, 지자체, 주민조합 간 협약식이 열렸다. 수상태양광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의미에 더해 안산시민 1만여명이 참여한 이례적인 신재생 사업이다.
시화호 태양광처럼 향후 발전산업은 지자체와 주민 중심 사업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 분야에 재생에너지 참여 의지도 높아지고 있지만, 그동안 에너지 관련 설비에 대한 혐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주민 수익공유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 중심 분산자원이 많아질수록 그리드 컨설팅 요구는 커진다. 우리 지역에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 시 적정 용량과 계통 연계 방법, 고객별 전력 분배 방안, 기존 발전소와 연동 및 다른 지역과 전력 거래 등 전체 사업설계와 조율을 가늠해 최적 투자대비 효율을 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분산전원은 가파도 등 육지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아 재생에너지 공급체계를 구축한 에너지자립섬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자립섬은 기본적으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ESS, 마을 주민 전력사용 상황에 따라 공급량을 시시각각 맞춰주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존에 사용하던 디젤발전소를 유지해 태풍 등 유사시 신재생에너지 전력과 디젤발전소 전력 통합 운영 방안도 마련한다.
분산전원도 마찬가지다. 최초 신재생 설비 건설에 앞서 변전소까지의 계통확보 방안, 전력이 남거나 부족할 시의 대책, ESS 용량, 기존 지역발전소와 신재생 발전 비중 등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해당 시기 전력가격과 지역 에너지 사용 현황에 따라 달라진다.
미래 에너지 컨설팅 영역은 스마트 빌딩 및 스마트 홈 분야로까지 확대된다. IoT 기술을 활용해 수많은 전기기기 전력사용현황을 체크하며 사용시간을 조정한다.
시장자유화 단계에서는 주변의 전력거래 대상을 찾는 비즈니스 확대가 예상된다.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전력서비스를 추천하고, 전력이 부족할 때 사들여야 하는 대상과 반대의 경우 남는 전력을 팔 대상을 실시간으로 찾아주는 것이 곧 경쟁력이다.
우리나라는 전력시장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ICT 발달로 컨설팅 능력은 높다. 개발도상국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기반 분산전원 시스템을 컨설팅해주고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개발도상국은 전력망이 구축되지 않은 곳이 많아 지역별 분산전원을 운영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비즈니스가 활성화하려면 우선 제도적으로 상호 간 전력을 판매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한 차례 통과가 좌절된 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전력산업의 변화 흐름 검토를 통한 전력 신산업 영역 구분>
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전력 신산업 유형별 성장 잠재성 분석)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