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中 불공정 경쟁, 출구전략 급하다

“중국 정부는 현지 패널업체에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우리 정부는 뭐 없나요?”

취재하면서 만난 기업인들이 농반진반으로 많이 하는 말이다. 중국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산업 지원은 막강하다. 기업이 총 투자비의 10%만 내면 패널 공장을 지을 수 있다고 할 정도다.

BOE, 차이나스타 등 주요 중국 패널업체 지난 1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액정표시장치(LCD) 불황에도 이익은 견고하게 성장했다. LCD 불황 직격탄을 맞은 LG디스플레이가 적자 전환한 것과 상반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 패널사의 '기타 수익'에 주목한다. 실제 패널 생산·판매에서 발생한 이익 규모를 크게 상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식 언급된 경우는 없지만 정부 지원금이 기타 수익으로 잡혔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지원이 불공정 경쟁 환경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발 LCD 공급과잉도 가시화됐다. 호황과 불황을 일정한 주기로 반복하는 크리스털 사이클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지적·규제하는 움직임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의 시장'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 선두 주자의 견제가 쉽지 않다. 어쩌면 한국 기업은 중국 기업이 아니라 현지 정부를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회와 정부는 디스플레이·반도체 산업을 개별 기업의 경쟁력으로 국한시키고 산업 흥망을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디스플레이·반도체는 대기업 비즈니스'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국회도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한국 디스플레이·반도체 산업에는 삼성, LG, SK만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후방 중견·중소기업이 생태계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경쟁력의 근원인 인력을 육성하고 기술 지원을 잘할 수 있는 방안은 많다. 적정한 예산, 치밀하게 짜인 정부 사업, 현장 목소리가 담긴 정책의 3박자가 가동돼야 한다. 국가 간에 긴밀히 공조해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도 고심해 봐야 할 것이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