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타트업 가치 평가 체제 구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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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를 다녀왔다는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첫마디가 “상처만 받고 왔어요”였다. 그는 “우리 창업 생태계가 실리콘밸리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당시 일행 대부분이 너무나 벌어진 격차를 실감, 표정이 어두워졌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를 넘을 수 없는 벽인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스타트업 가능성 평가 연구소다. 사실 이 연구소를 가장 부러워했다. 이 연구소는 스타트업을 무작위로 분석, 성공 가능성을 검증하는 민간업체다. 분석 결과는 보고서로 만들어진다. 투자기관 심사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연구소는 언론사와 연계돼 있다. 보고서가 나오면 곧바로 언론에 공개되는 구조다. 미국 전역에 이 같은 연구소가 1000개 넘게 분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국내는 가능성 검증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나 투자기관도 스타트업 가치를 매출이나 재무 자료 위주로 판단한다. 보고서 작성도 스타트업 몫이다. 기술 분야 스타트업이 정부 예산을 따내려면 많게는 70~80장 분량의 보고서를 내야 한다.

심사위원 눈에 들긴 더 어렵다. 검토 작업이 5~10분 만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심지 못하면 탈락 가능성이 짙다. 보고서 내용 부풀리기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이다. 심사 통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성공 보수를 챙기는 곳이다. 보고서 한 건에 2000만원을 넘게 받기도 한다.

정부 지원 사업 공고가 뜨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유혹한다. 업계 관계자는 “평가 체제가 부실하다 보니 본질에서 벗어난 외곽 산업이 커지는 것”이라면서 “스타트업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생각도 미국과 온도 차가 크다. 미국은 스타트업 육성에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인다. 구글, 페이스북처럼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거대 기업이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미국의 미래라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민간 액셀러레이터, 크라우딩 펀딩 시장이 활성화되는 결실을 맺었다.

시간이 없다. 미국은커녕 중국마저 우리가 추월할 수 없는 격차로 벌어지고 있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정확히 가려내고 지원해야 한다. 민간 주도의 투자 생태계 확대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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