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이 장비·재료·부품 중소기업 기술 개발을 위해 생산 라인을 대폭 개방한다. 그동안 소수 협력사에 한해 생산 라인에서 개발되고 있는 제품을 시험할 수 있도록 했지만 개방 대상을 크게 확대한다. 대기업 생산 라인을 테스트베드로 활용, 중소기업의 개발 기간을 단축시키는 한편 양산 성공률을 높이려는 의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장비·소재 기업은 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상생발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상생 발전 공동 선언을 했다.
상생발전위원회에서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공동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위원으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과 부품·소재·장비 기업, 대학 등에서 20명이 참여한다.
상생발전위는 주요 활동으로 오는 2022년까지 5년 동안 총 2조원 규모의 설비와 전문 인력을 투입, 후방기업의 성능 평가를 지원하기로 했다. 반도체는 대기업 양산 라인을 활용해 중소기업 부품·소재·장비 성능을 평가하는 횟수가 연간 10회에 그쳤지만 올해부터 연간 100회로 대폭 증가한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별도의 성능 평가 사업이 그동안 전무했지만 부품 대상으로 신설됐다.
생산 라인 성능 평가는 후방기업의 제품 공급에 절대 영향력을 미친다. 실제 양산 현장 환경에서 평가해야 문제점 보완과 최종 제품 생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요 핵심 협력사가 아니면 양산 라인에서 테스트할 기회조차 잡기 어렵다. 전방기업이 바쁘면 테스트 기회는 더욱더 잡기 어려워진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나 램리서치 같은 세계 수준의 반도체 장비 업체는 독자 공정 라인을 갖춰 신제품 개발이 용이하다. 반면에 국내에는 이 같은 테스트베드를 갖춘 업체가 전무하다. 성능 평가 과정이 시장 진입의 또 다른 장벽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한 부품 기업 관계자는 “양산 라인에서 테스트해 보면 무엇을 얼마나 보완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데 핵심 협력사가 아니면 기회 포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라인 테스트를 못해서 다음 단계로의 개발을 진척시키기 어려워 난항을 겪는 때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고객사 라인 내 일부 장비의 예방보수(PM) 시기에 성능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이지만 그 시간이 매우 제한돼 기회가 많이 없다”면서 “반도체 장비재료 국산화율은 10년 전에 비해 오히려 감소하고, 디스플레이 후방산업은 증가폭이 더딘 이유가 성능을 평가받기 어려워서였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이날 반도체·디스플레이 인력 양성을 위한 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또 2022년까지 후발국과의 격차를 5년으로 유지하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5년 단축하기 위한 국산화 목표치를 제시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상생발전위는 그동안 고질병으로 제기돼 온 인력 양성 문제를 포함해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상당히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상생발전위가 대기업, 중소기업과 정부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하도록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