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 그들은 한국에 무엇인가]<6>감추고 안밝히면 그만…베일에 싸인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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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단점은 감추고 싶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업 실패, 지속적인 적자, 소비자 피해, 소송은 기업 운영에 치명적 악재다. 이런 약점 외에도 기업이 숨기고자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과다. 높은 제품 판매량과 매출 등 실적은 소위 시장에서 '잘 나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기업엔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 세금 때문이다.

법인 소득에 따라 과세하는 법인세는 기업이 가능하면 최소화하길 원하는 고정 비용이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재무 정보를 공개한다.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인세를 거둬들이기도 용이하다. 문제는 모든 기업이 재무 상태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대표 사례가 유한회사로 설립한 글로벌 기업이다.

유한회사로 등록한 글로벌 기업은 국내 매출이나 고용, 투자 규모 등을 공개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일단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베일에 가려두기 때문에 법인세를 부과하기도 쉽지 않다. 일종의 과세 '사각지대'인 셈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지만 외국 기업이란 이유로 정보를 감추는 '깜깜이' 전략은 이제 횡포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시제도 등으로 기업 투명성을 요구 받는 국내 기업과 역차별 논란까지 거세지고 있다.

◇몇 대를 팔았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06년 수입차 한국시장 점유율은 4.15%에 불과했다. 10년이 지난 2016년 수입차 판매량은 22만5000대로 시장 점유율 14.36%를 기록했다. 판매 대수로는 10년 만에 5배 이상 늘어났다.

벤츠·BMW·폭스바겐 등 이미 대중화된 브랜드뿐만 아니라 포르쉐,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등 브랜드 수요도 다양화됐다. 이들 중 기업 비밀주의 전략을 고수하면서 한국에서 판매된 차량이 몇대인지 알 수 없는 때가 있다.

벤츠와 BMW 등 한국 판매량이 많은 수입차는 한국내 법인을 설립, 매년 감사보고서를 제출한다. 또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회원사로 등록한 23개 수입차 브랜드는 매달 판매량을 공시해 수익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세라티, 페라리, 애스턴마틴, 맥라렌 등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협회에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얼마나 차를 팔았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마세라티는 한국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최근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1500억원 안팎 매출을 올리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략적 판매 대수만 가늠할 뿐 과세 기준으로 잡을 매출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상태다.

◇“사회공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글로벌 기업 가운데 상법상 유한회사로 설립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비밀주의' 행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자동차 업계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까지 한국 기업과 역차별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한국HP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글로벌 ICT기업은 한국 영업활동에 대한 정보를 일체 공개하지 않는 유한회사다. 매출이나 영업이익뿐만 아니라 한국내 고용현황이나 투자 규모도 알기 힘들다. 한국MS는 한국내 매출이 8000억원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수치는 밝히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ICT 기업이 한국에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미국이나 중국 등 현지 본사만 배불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한국 투자 규모를 모르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용과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 나선다고 반론하지만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 외에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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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회사는 국내법을 이용해 정보 공개 의무를 피한 사례다. 일부는 현행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형평성에 어긋난 정보 미공개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걸리기 전'에는 아무 것도 밝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퀄컴 특허권 남용을 적발하며 과징금 1조300억원을 부과키로 했다. 퀄컴은 이에 불복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소송에 관련해 작성한 답변서는 열람·복사를 제한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퀄컴이 어떤 답변을 내놓았는지 소송 당사자조차 파악할 수 없다. 지난해 초 퀄컴이 한국 반독점 위반 조사와 관련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낸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기업 영업 비밀이란 이유로 당연히 공개해야 할 정보도 숨기는 때가 다반사다. 대부분 기업이 매출과 영업이익을 공개해도 세부 상표, 특허 라이선스 수익은 밝히지 않는다. 최근 감사원은 외국법인 사용료 소득에 대한 법인세 미징수를 이유로 서울지방국세청에 시정을 정식 요구했다. 법인세법 93조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외국기업(글로벌기업)에 대가를 지불하고 상표권을 사용하면 지급액의 20%를 외국법인 각 사업연도 소득에 대한 법인세로 원천징수한다. 하지만 이를 신고·납부하지 않은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로열티 등 수익은 영업 비밀이란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때가 많다”면서 “법적 제재를 받기 전까지 '버티기' 전략을 취하는 글로벌 기업도 많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안호천차장(팀장),유선일·최호·권동준·정용철·오대석·최재필·이영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