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권고안에 따라 세이프가드가 발효되면 미국에 수출하는 삼성과 LG 세탁기 절반 이상이 '관세 폭탄'을 맞게 된다. 미국 현지 공장 가동으로 대응하기 전까지 대미 세탁기 판매 감소가 불가피하다. 세탁기뿐만 아니라 태양광 등 타 산업까지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대응 마련이 시급하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는 약 250만대에 이른다. 고관세를 부과하는 120만대 물량을 단순히 빼도 최소 130만대가 50% 관세 대상이다. 세이프가드는 삼성과 LG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수입 세탁기에도 적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 세탁기 절반 넘는 물량이 50% 관세를 물게 될 것”이라면서 “세탁기 수출에 엄청난 타격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장 점유율도 미국 업체 중심으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 트랙라인 등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미국 세탁기 시장은 올 1분기 기준 월풀이 38.5%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17.0%, LG전자는 13.4% 수준이다. 50% 관세가 부과되면 제품 가격이 급등해 소비자가 구매를 꺼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000달러 수준인 한국 세탁기에 관세가 부과되면 1500달러 이상으로 제품 가격이 뛴다. 운송비와 유통 마진까지 더해지면 미국산 세탁기 대비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판매량 감소로 한국산 세탁기는 시장 점유율을 뺏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지 공장 가동으로 세이프가드 피해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LG전자는 테네시주에서 가전 공장 가동을 준비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미국에 판매하는 모든 세탁기 모델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내년에 공장을 가동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피해는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도 2019년 예정인 테네시 공장 가동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판매량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분위기다.
업계는 세이프가드로 대표되는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타 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미 ITC는 지난달 태양광 전지와 부품 수입에 대해 저율관세할당(TRQ)을 설정했다.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30~35%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발표했다. 세탁기와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결정을 기다린다. 미국은 철강, 화학, 섬유, 기계 등 한국제품에도 대대적인 수입 규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한국을 상대로 신규 수입 규제에 착수한 건(24건) 가운데 미국이 8건으로 가장 많다.
정부는 22일 국내 세탁기 업계와 대책회의를 열었다. 세이프가드 권고안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등 정부는 미 행정부, 의회, 핵심인사에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세이프가드 반대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다. 세이프가드가 불가피하더라도 우리 업계가 희망하는 형태로 채택되도록 의견을 지속 개진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기업도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 주 등 현지 공장 건설 예정지역 주지사, 의회관계자를 통해 우리 측 입장이 대통령 최종 결정에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 최종 결정 시 국제 규범 위반 여부를 파악, 베트남 등 이해 관계국과 공조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