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직류(DC)

1880년대 전류 전쟁이 또다시 벌어졌다. 교류(AC) 시스템을 개발한 테슬라와 직류(DC) 방식을 고집한 에디슨 간의 힘겨루기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현재 AC 기반의 송배전은 당시 전력을 멀리 보내는데 필요한 변압기가 테슬라 AC 방식으로 먼저 개발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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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전력 기술 발전으로 DC의 승·감압이 AC만큼 용이해졌다. 때마침 불어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4차 산업혁명 바람으로 말미암아 스마트폰, 사물인터넷(IoT), 전기자동차 등과 같은 DC 부하 기기, 시스템은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태양광, 연료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정부가 2030년까지 전력 생산 비중을 20% 높이겠다는 신재생에너지 분야 역시 DC 중심 분산 전원 시스템이다.

장점은 생각보다 많다. 송전 시 전력 손실이 AC 대비 40% 이상 낮을 뿐만 아니라 AC와 DC 간 변환도 필요치 않아 에너지 효율을 5% 가까이 높일 수 있다. 전력 계통의 안정성도 향상된다. 전력 제어가 쉽고 전력망끼리 연계가 가능, 정전 사고 시 전력망 분리 운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파수가 없어 송전 시 전자파 문제가 없고, 원거리 전력선을 지중화 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차세대 송전 기술 고압DC(HVDC)는 중국, 인도 등 장거리 송전이 필요한 지역과 유럽 등 나라 간 계통을 연계하는 슈퍼그리드 수요를 중심으로 2026년이면 150억달러 규모로의 성장이 전망된다. 중·저압DC 시장의 잠재력도 크다. 분산 전원 시스템과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이 핵심 적용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기업 대부분이 영세, 세계 시장에 내밀 명함이 없다. 전력 기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다. DC를 전력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로 핵심 기술 개발이다. DC로 바꾸면 송배전은 물론 건물 내부 시스템, 나아가 컴퓨터·가전·전기차에서 산업용 장비에 이르기까지 인버터를 비롯한 부품 및 시스템 교체가 수반된다. 고압DC에 이어 중·저압DC 송배전 기술, DC 시스템 운영 기술, 통신 기술, 전력 변환 기술 등 다방면에 동시 활용될 수 있는 융·복합 공통 핵심 기술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로 기업이 충분한 트랙레코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섬이나 빌딩 단위로 추진돼 온 실증 사업을 산업단지와 도심으로 확대해야 한다. 영국이 섬 사이 배전 선로를 중압DC로 대체하고, 일본도 야마가타현과 홋카이도 오비히로시 등에 DC 배전을 적용하는 등 세계 각국이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국소 규모다. 유선통신 인프라 구축에 늦은 개발도상국이 무선통신 시대로 곧장 진입한 것처럼 우리 역시 DC 열풍을 전력 산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변화는 다가오는 해일과 같다. 준비한 자만이 파도를 탈 수 있다. 정부는 DC 송배전 시스템을 성장 동력으로 선정하고 IDC나 신재생에너지원에 적용해 실증하는 등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전자부품연구원도 이에 발맞춰 지난 6월 전자기·환경신뢰성 테스트와 사업화를 종합 지원하는 DC전기전자산업육성센터를 개소한 바 있다. 우리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한발 앞선 통신 인프라 구축의 힘이 컸다. 새로운 에너지 빅뱅 시대를 열기 위해 좀 더 분발할 때다.

박청원 전자부품연구원장 cwpark9@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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