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한 국산 반도체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상용화 사업이 결국 당초 기대를 채우지 못한 채 끝이 난다. 토종 코어 활용을 독려하기 위해 기획된 이 사업은 영국 ARM 등 해외 업체로 빠져나가는 로열티를 줄이고 다가오는 사물인터넷(IoT) 시대 핵심 기술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2015년부터 올 하반기까지 2년 동안 95억원의 정부 자금이 투입됐다.
긍정적 성과는 분명 있었다. 시제품 개발이 성공적으로 완료됐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개선 사항이 도출됐다. 국내에도 쓸 만한 코어 IP가 있다는 인식도 널리 알렸다. 그러나 당초 제시한 정책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제가 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사업에 참여한 팹리스 업체 대부분은 현재 상태로는 상용화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칩 설계 때 활용되는 디버깅 툴 속도 개선, 컴파일러 성능 확대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지원이 끊어지면 이 같은 문제가 모두 개선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기 안목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산 코어를 보유한 민간업체 한 곳과 정부 기관 세 곳 모두가 지원 대상에 포함되다 보니 가뜩이나 적은 자원이 분산됐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는 한 곳에 자원을 몰아줄 경우 특혜 시비 소지가 됐을 것이다. 정부가 당초 철저한 평가 후 될 만한 코어에 자원을 몰아주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허한 약속에 그쳤다. 후속 지원이 없으면 이런 계획은 이뤄질 수 없다. 그러니 안 하니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도덕성 해이 논란도 있다. 소프트웨어(SW)가 주력인 업체가 과제에 참여하면서 이런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선 팹리스가 일정 수준의 코어 도입 비용을 치르도록 했더라면 지금과 결과가 달랐을 것이란 주장도 내놓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코어 제공자로 참여한 곳 가운데 유일하게 기술 이전 비용을 받았다. 돈을 내고 ETRI 코어 기술을 가져온 팹리스는 어떻게든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곳들은? 좀 더 긴장감과 책임감을 가졌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의 상용화 사업 기획과 선정, 운영, 평가가 더욱 정교해지고 투명해져야 할 이유다. 이번 사업의 아쉬움이 되풀이되지 않길 기대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