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패러다임 대전환'을 예고했다. 성장 결과로 일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저성장 해법으로도 일자리 카드를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아 '일자리 추경'의 절박함과 시급성을 설명했다. 시정연설은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 만에 이뤄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취임 이후 가장 빠른 시정연설이다. 추경을 주제로 한 시정연설도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전체 연설시간 33분가량 가운데 일자리 추경의 당위성과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설명하는 데 30분 이상을 할애했다. 시급한 현 상황에 상세한 부연 설명을 더한 후 절박한 호소를 전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고용절벽에 따른 저성장의 해법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며 “성장의 결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루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추경이 고용위기감에 따른 '긴급 처방전'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재난에 가까운 실업과 분배악화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긴급처방일 뿐, 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국가 과제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경제 영역인 일자리 창출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큰 정부' 지적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일은 하는 정부'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부”라며 “증세나 국채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한데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나아가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SOC사업, 국채 발행, 증세가 없는 이른바 '3무(無) 추경'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추경은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을 개선하고, 경제불평등으로 인한 소득격차를 줄이는 밑거름이다. 이를 발판으로 가계부채 개선 정책과 세제개편안을 마련하고 재벌개혁 등을 강도 높게 추진한다.
문 대통령은 소득분배 악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소득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의 소득이 2016년에 5.6%나 줄었고, 이들 1분위 계층의 소득감소가 5분기 동안, 1년 넘게 지속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은 참으로 우려해야 할 일”이라며 “이런 흐름을 바로잡지 않으면 대다수 국민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정연설 형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각종 데이터를 프리젠테이션파일 형식으로 함께 보여줬다.
시정연설 후 추경안 국회 논의에는 진전이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문 대통령 연설 후 예산안 심사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 국회 인준 절차에 반발, 불참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시정연설이 답보하는 '1기 내각' 조각에 돌파구가 될지는 미지수다.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났지만, 장관 인선은 지지부진하다. 국회는 이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을 재시도했지만 불발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한 상임위 일정은 잡히지도 않았다.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여야 갈등의 골이 깊어 이번주 인사청문회도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직접 야당의 협조를 구했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시정연설 직전 국회의장실에서 여야 대표를 만나 설득했지만 한국당 대표는 불참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을 믿는다. 함께 국회에서 협치를 통해 국민께 봉사하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