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쇄신]삼성 심장 미전실 해체...전자·물산·생명 중심 계열사 자율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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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전격 해체했다. 앞으로는 그룹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각 계열사가 대표이사와 이사회를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해나간다. 그룹 차원 조정과 관리보다 계열사 판단이 중요해졌다.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을 비롯한 미전실 7개 팀장 전원이 사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실행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미전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조직 체계 전반 변화를 꾀했다. 쇄신 의지를 보여주려는 초강수다.

삼성 미전실은 총수 직속 조직으로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 비서실로 출발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기능을 유지해 왔다. 미전실은 사업재편, 인수합병(M&A), 계열사 관리, 투자나 채용 등 그룹 차원의 큰 의사결정을 담당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결국 58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사임하는 임원은 최 실장과 장 차장을 비롯해 김종중 전략팀장(사장), 이수형 기획팀장(부사장), 정현호 인사지원팀장(사장), 성열우 법무팀장(사장), 이준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 박학규 경영진단팀장(부사장), 임영빈 금융일류화지원팀장(부사장)이다. 이들은 단순히 직위에서 물러나는 사임이 아니라 3월 1일부로 전원 퇴사다.

삼성은 통상 임원 이상에서 퇴임하면 상담역, 자문역, 고문 등으로 예우해준다. 하지만 이번에 사임하는 미전실 팀장들은 이런 예우 없이 곧바로 퇴사한다. 그만큼 삼성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갑작스런 팀장들 사임 발표에 미전실과 그룹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미전실 한 임원은 “함께 일했던 팀장들이 돌연 사임한다는 소식에 침통한 분위기”라면서 “후속조치로 미전실 임원과 직원 재배치를 한다는데 팀장들이 물러나는 상황에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여명 미전실 임원과 직원은 순차적으로 계열사에 분산 배치될 전망이다. 미전실 해체 발표에 따른 후속대응 등 처리할 업무가 있는 만큼 후속작업과 재배치 속도를 맞춰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전 체제와 다른 새로운 삼성이 시작되는 것”이라며 “일부 혼선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사업과 경영 수행 과정에서 좋은 쪽으로 개선해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미전실이 사라지면서 앞으로는 그룹사 차원의 의사결정 대신 각 계열사 자율경영을 하게 된다. 삼성은 각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룹 사장단 회의도 폐지한다. 그룹 공채, 최고경영자 세미나 등 그룹 차원 행사도 모두 폐지할 전망이다.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도 각 계열사가 자율적으로 시행한다. 지난해 미뤘던 사장단 인사는 이달 말 정기 주주총회에 앞서 각 사가 이사회를 열고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발표 시기도 기존에 그룹에서 일괄 발표하는 것과 달리 각 사별로 차이가 있을 전망이다.

앞서 삼성SDI가 이사회를 통해 전영현 사장을 새 사내이사로 선임하며 자율경영을 선보였다. 전 사장은 24일 주총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향후 그룹 주요 계열사는 삼성전자(전자)와 삼성생명(금융), 삼성물산을 3대 축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은 3대 계열사 경영진이 모여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하지만 국내 계열사 약 60개, 해외법인 포함 400여개에 이르는 거대 그룹 삼성에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채용이나 투자 등 그룹차원에서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전실이 담당했던 부실 계열사 관리 주체도 사라진다.

이번 삼성 쇄신안은 총수 중심 한국식 대기업 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총수와 핵심 관리조직이 여러 계열사를 이끄는 `선단식 경영`이었다. 이번 삼성 결정은 이사회와 전문경영인 주도로 성과를 내고 평가하는 시스템 도입을 확산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