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판교 주말을 되살린 포켓몬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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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고 열풍이 뜨겁다. 한 달 새 1000만명이 게임을 내려 받았다. 뒤늦게 게임이 정식 서비스되면서다. 게임 기업이 몰린 판교 테크노밸리의 주말 풍경을 바꿀 정도다. 판교 거리는 주중이면 사람으로 북적인다. 주말이면 인적을 찾기 어렵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 음식점도 대부분 문을 닫는다. 기업 도시인 탓에 직장인이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이면 도시가 텅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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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말 풍경은 다르다. 아직 바람이 찬 거리에서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보며 탄천이나 광장을 오가는 사람을 쉽게 마주친다. 가족과 함께, 때로는 혼자 골똘히 몬스터를 잡으러 길을 걷는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몬스터를 대량 사냥하기에 좋은 장소란 게 입소문을 탄 덕택이다. 죽어 있던 주말 상권까지 살려 낼 분위기다.

솔직히 게임 산업의 한복판에서 외산 게임으로 거리가 북적이는 것은 `게임 강국 코리아`의 자존심에 상처를 낼 법한 일이다.

포켓몬고가 가져온 변화는 게임 산업 중심인 판교에 각별하다.

포켓몬고는 구글에서 분사한 나이앤틱이 개발한 게임이다. 포켓몬고가 서비스되는 곳곳은 모두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사람만 북적이는 게 아니라 나이엔틱의 기업 가치도 4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7월의 평가인 점을 고려하면 가치가 이보다 더 높을 가능성도 있다. 비상장 기업의 기업 가치가 1조원을 넘을 때 붙는 수식어인 유니콘 기업에 제격이다.

나이앤틱은 2010년 구글 사내 벤처로 시작했다. 설립 동기는 단순했다. “사람들의 습관을 바꿔 보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게 해 보자. 우리 때문에 한 사람이 한 블록을 더 걷게 된다면 성공한 것이다”가 나이앤틱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설립된 나이앤틱은 구글에서 분사해 나온 지 채 1년도 안돼 4조2700억원의 기업 가치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포켓몬고 열풍은 게임 기업에 증강현실(AR) 바람을 일으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국내 게임 산업 육성을 내걸고 지난해부터 다양한 AR 게임 개발 지원 정책을 펴냈다. 기업도 너나없이 AR 게임 개발에 매달린다.

포켓몬고 성공 비결을 따지는 결과론식 해석은 많다. 포켓몬이란 인기 캐릭터를 활용했다는 점과 구글이란 글로벌 기업이 뒷배경이 됐다는 점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 요인은 “인간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나이앤틱 창업자의 야심에 찬 동기다. 나이앤틱이 `포켓몬 고`를 만든 동기는 단순하다. 울림은 컸다. 사람 습관을 바꾸면서 인간의 보편 가치를 건드렸다. 여기에 개별 국가와 지역마다 특화된 지도 데이터를 활용했다. 보편 가치 이면에 차별 가치를 제시한 셈이다. 마치 2009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던 것과 흡사하다. 꺼져 가던 AR의 불씨를 되살렸고, 세계 100개가 넘는 국가에서 게임을 즐긴다.

나이앤틱이 게이머를 많이 모으기 위해 AR를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잘 만든 게임을 만들더라도 지구촌을 들썩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포켓몬고의 성공은 나이앤틱의 게임 개발 동기이자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다 게임 중독성 문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 국내 기업과 다른 점도 되새겨 볼 일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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