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어느 때보다 숭고합니다. 부모라는 이름이 허락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굳건해지기도 합니다.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부모들은 생명 탄생의 순간 보험을 드는데요. 바로 `제대혈` 보관입니다. 일생 딱 한번 뿐인 제대혈 보관은 자녀의 건강을 기원하고, 혹시 모를 가족 질병에 대비하는 지원군이 됩니다. 최근에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제대혈 기증도 주목받습니다. 일각에서는 값비싼 보관비용, 활용 사례 부족 등을 이유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 건강 지킴이 혹은 비과학적 마케팅 메시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제대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Q. 제대혈은 무엇인가요?
A. 신생아 탯줄 속 혈액을 가리킵니다. 출산 시 채취해 냉동 보관했다가 본인 혹은 부모, 형제가 난치병에 걸렸을 때 이 혈액을 투여해 치료합니다.
1988년 프랑스에서 첫 이식된 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으로 확산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첫 이식됐습니다. 제대혈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들어있습니다.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혈액질환에 주로 쓰입니다.
제대혈에 조혈모세포뿐만 아니라 연골, 뼈, 근육, 신경 등 장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다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활용해 뇌성마비, 발달장애 등 뇌신경질환과 기타 난치성 질환 치료에도 연구합니다.
제대혈 채취는 분만 후 탯줄을 자르고 태반이 배출된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출산 과정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의사 또는 의료진에 의해 2~3분 안에 완료됩니다. 채취된 제대혈은 전문보관 기업에 전달됩니다. 기업은 액체 질소를 이용한 초저온 기술로 냉동 보관합니다. 급속 냉동해 보관하기 때문에 15년 이상 보관할 수 있습니다.
Q. 제대혈은 어디에 쓰이나요?
A. 제대혈에는 조혈모세포가 풍부합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을 치료하는데 쓰입니다. 우리 몸속 고장난 면역, 재생 시스템을 건강한 세포를 집어넣어 정상화하는 방식입니다. 국제 학술지 `스템셀`에 따르면 제대혈을 이식할 때 조직적합성항원(HLA) 일치도가 높을수록 치료 효과가 높다고 보고됩니다. 혈액질환 중 유전적 소인에 발병하는 1% 미만 특정 질환을 제외하면 타인 제대혈보다 자신의 것이 치료효과가 높다는 말입니다.
백혈병 치료과정을 보면 골수이식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골수에도 조혈모세포가 들어가 있습니다. 대부분 가족이나 조직적합성항원 일치율 높은 타인 골수를 이식합니다. 타인 골수 이식보다 자신의 제대혈을 이식하는 것이 면역거부반응, 합병증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채취 시 고통이 없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제대혈 줄기세포를 배양해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 치료제 개발도 시도 중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보관된 제대혈은 총 60만건이 넘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활용된 사례는 약 1300건 정도입니다.
Q. 제대혈 효과에 대한 논란은 무엇인가요?
A. 제대혈 보관이 불필요하다는 측은 탯줄에서 채취할 수 있는 제대혈 양은 제한적이며, 치료에 효과적인 중간엽줄기세포 양도 적다고 주장합니다. 치료효과 역시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에 불필요한 희망을 갖게 한다고 비판합니다. 나아가 100만원이 넘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기업 상술이라고까지 목소리를 높입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제대혈이 현대의학이라고 일컫는 `재생의학`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측 주장처럼 제대혈은 단위당 세포수가 적지만, 조혈모세포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로도 환자 골수에 생착이 가능합니다. 정부도 2011년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환자 치료에 활용토록 합니다. 제정 배경에는 “제대혈에서 채취한 조혈모세포는 백혈병 등 악성 혈액 질환, 유전성 질환 등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체 줄기세포 원천 연구로서 바이오산업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제대혈 보관 기업은 단순 보관을 넘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 중입니다.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정부 승인을 받은 치료제를 출시했습니다. 줄기세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한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임상 데이터로 불안을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