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메스·APTC 상용화…SK하이닉스·삼성전자에 공급
국내 업체가 반도체 식각(Etch) 장비 국산화에 연이어 성공했다. 그동안 반도체 장비 국산화는 대부분 증착 장비에 머물러 있었지만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같은 외산 장비 의존도를 줄일 수 있게 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APTC는 지난해 차세대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를 개발하고 SK하이닉스 성능 테스트를 통과했다. 올해부터 대량 공급이 이뤄졌다.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 지역에 위치한 SK하이닉스 D램, 낸드플래시 양산 라인에 APTC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가 10대 이상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APTC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출신 김남헌 사장이 2002년에 설립한 반도체 장비 업체다. 김 사장은 어플라이드에서 플라즈마 소스, 식각 장비 연구개발(R&D)을 맡아 온 이 분야 전문가다. APTC가 SK하이닉스에 공급한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는 20나노급 이하 반도체 공정에서 분리 절연막(STI)을 생성할 때나 게이트 생성 공정 때 사용된다.
APTC는 창업 초기 김 사장의 주특기인 식각용 플라즈마 소스 개발에 매진하다 2005년부터 SK하이닉스의 전략 파트너로 선정돼 식각 장비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7년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 대비 기술 난이도가 한 단계 낮은 옥사이드 및 메탈 식각 장비를 상용화했고, 2013년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 개발에 성공에 공급을 성사시켰다. 대량 공급은 올해부터다. 이전 제품 대비 성능과 정밀도를 강화한 덕에 SK하이닉스가 구매량을 크게 늘렸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공정 프로세스에서 APTC 폴리 식각 장비가 외산 장비 대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안다”면서 “수년 동안 R&D에 매진한 것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도 식각 장비를 신규 사업으로 밀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옥사이드 식각 장비를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에 대량 공급했다. 지난해 매출액 10% 이상(약 1500억원)이 식각 장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메스가 내년에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를 상용화할 계획인 데다 삼성전자 평택 3D 낸드플래시 투자가 본격화되면 식각 장비 매출액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식 세메스 대표는 “주력인 세정 장비 매출 비중이 아직도 상당히 크지만 식각 장비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고신뢰성을 요하는 공정에선 외산 장비, 그렇지 않은 곳에는 국산 장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국내 장비 업계는 꾸준한 기술 개발은 물론 해외 업체의 특허 소송에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생산 업체가 장비 국산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매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대안이 생기면 해외 업체가 장비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APTC 외에도 중국계 미국인 제럴드 인이 창업한 반도체 장비 업체 AMEC의 식각 장비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럴드 인을 포함해 AMEC 핵심 인력은 대부분 어플라이드 출신이다.
식각은 노광으로 새겨진 회로 패턴이나 증착 공정으로 얹어진 박막을 화학·물리 반응을 이용해 깎아 내는 공정을 의미한다. 최근 선폭 미세화 한계로 회로 패턴을 새기는 노광 공정 횟수가 늘면서 식각 공정 역시 확대됐다. 이 덕에 장비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식각 장비 시장 규모는 약 7조원이다. 이 가운데 폴리실리콘 식각 장비가 4조5000억원, 옥사이드 식각 장비 시장이 2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미국 램리서치가 전체 식각 장비 시장 50%를 장악하고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