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예고된 겨울

“예고된 겨울이죠.”

오랜만에 만난 벤처업계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최근 날씨를 말한 것은 아니다. 벤처·창업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사상 최대 벤처투자 펀드 결성을 끝으로 올해부터 시장 전망이 어두울 것이라는 경고등은 계속 켜졌다. 지난해에 상장한 벤처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 온·오프라인통합(O2O) 기업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의 구속을 시작으로 유명 벤처사업가들이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호 대표는 무죄로 판명됐지만 벤처 투자를 사기로 보는 검찰 시선에 투자 생태계는 얼어붙었다.

예민한 투자자는 경기 전망이 좋지 않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 현금 보유 상황에서도 투자를 하지 않았다. 구조조정을 하거나 문을 닫는 기업도 나왔다.

여기에 대통령 비선 실세 의혹은 시한폭탄의 버튼이 됐다.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른바 `최순실 예산`으로 불리는 문화창조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될 예정이다. 차은택 씨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창조벤처단지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다. 예고된 겨울이었지만 추운 것은 현실이다.

덩달아 불똥이 튄 기업들은 숨죽이고 있다. 문화창조벤처단지에 입주해 있다는 것만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방송사 카메라가 스케치 장면을 취재할 때 엉뚱한 회사 로고가 비춰진 것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죄인이 아닌 데도 죄인 취급을 받는다.

의혹은 밝혀져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벤처·창업계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

벤처·창업은 경제 성장 동력이 꺼져 가는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대안이다. 긴 겨울을 보내야 할 벤처·창업계에 다가오는 봄의 희망마저 꺾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꼼수` 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가는 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여 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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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기업/정책 전문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