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데이터 시대에 기술을 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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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호 분야를 연구하면서 많은 사고를 접하고 경험하게 됐다. 사고가 발생하는 배경과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기술 분석은 필수이며, 사고 원인을 찾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곤 한다. 하지만 범죄자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사이버 공격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근본 배경과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청소년들이 재미 삼아서 사이버 공격을 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국가 후원을 받는 조직화된 전문가 집단이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사소한 경제 이익에서부터 정치 및 국가를 목표로 한 공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공격을 하지만 한 단계 깊이 들여다볼 때 도대체 누가, 왜, 이 시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특정한 자원을 활용해 공격하는지 파악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이런 한계로 조사 결과는 추정과 불확실이 전제된 가운데 오리무중이 되고 만다. 그리고 목소리가 큰 주장만이 난무하게 된다.

간혹 사건의 원인이 정확하게 파악되는 경우도 있다. 우연히 식사 자리에서 듣게 된 이야기를 재미 삼아 실천하다가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사고를 유발한 시스템이 허술한 이유가 저가 발주 관행으로 인해 컴퓨터 처리 용량이 부족하자 다단계 보안시스템 가운데 한 부분을 제거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사고 데이터를 기술 분석하다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오히려 엉뚱한 진술로 인해 원인이 밝혀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 증거들이 증명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기술 데이터들에 대해 어떠한 혜안으로 때로는 넓고 한편으로는 깊고 유연하게 창의력을 발휘,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역량이 문제 해결에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역량은 어떻게 길러지고 마련될 수 있을까. 금융권에 사고 분석을 위한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이 개발돼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고를 탐지하지 못하고 상당히 많은 무고한 거래를 사고로 오인하는 이유는 구축된 시스템의 기술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관점과 시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창의적이지 못하며, 아직은 덜 치열하기 때문이다.

요즘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이다. `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로, 인문계열을 전공한 학생이 취업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이과를 가야만 취업의 길이 크게 열린다고 한다. 정부 주도로 대학은 기술 인력을 더 많이 육성하기 위해 인문계열이 이공계열과 융합하도록 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에서의 문과, 이과 구성 비율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필요한 데이터를 효과 및 효율적으로 수집하는 기초 역량과 이를 활용하는 지혜와 안목을 길러 내는 교육 과정은 많지 않다. 이러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 구인 광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정한 기술을 잘 다룰 수 있는가를 묻지만 인문학적 혜안에 대해서는 `기획` 같은 포괄 용어로 기술돼 어떤 역량을 원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부의 이공계 인재 양성이 혹시라도 기술만 아는 엔지니어를 양산하는 결과가 되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해 열광했다. 곧 AI을 지닌 컴퓨터에 지배당하는 사회가 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정도로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정부는 새로운 펀드를 만들고 추진할 조직을 구성했다. 이러한 기술도 컴퓨터 학습 과정 구성과 의사결정 기준 마련에 인간의 혜안이 없었다면 근본적으로 작동할 수 없었다. 인간을 이해하고 조직과 사회의 운영 원리를 경험으로 체득하며 체계화할 수 있는 인문학적 역량이 기술과 함께 요구되는 것이다. 기술과 인문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오히려 양측은 적대 관계이며, 경쟁하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 사회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대책을 정확히 제시할 수 있는 문제를 시간과 자원만 소모하면서 과거 대책을 재탕 삼탕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장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연한 분석을 하고 전체 프로세스를 초기에 설정한 목적과 취지에서 살펴본다면 시간은 조금 더 소모되더라도 원인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근본 처치를 할 수 있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텐데 예산과 인력 문제로만 귀결돼 한정된 자원 탓을 하게 된다.

최근 발생한 지하철 안전사고와 지난 선거에서의 부정확한 여론 조사 등 여러 영역에 대해 현장과 기술을 분석한 기초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의 혜안을 빌려서 유연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근본에서부터 차근차근 점검한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는 유행하는 기술에 천착하거나 홍보가 잘된, 요약된 특정 자료가 여론을 주도해 엉뚱한 대책을 만드는 경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의 잣대와 틀을 살펴보고 정확한 맥을 짚어 내는 자리에 기술자와 인문학자가 함께해야 할 것이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kevin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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