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초 한국 경제 성장률을 2.9%로 예상했다가 2.7%로 낮췄다. 골드만삭스, JP모건, 시티은행 등 10개 글로벌 투자은행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지난해 말 2.8%에서 최근 2.5%까지 떨어졌다. 저성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경제를 옥죄기 시작한 저성장은 한국 경제의 구조 문제 때문이란 의견이 많아 우려가 크다. 단순한 경기순환에서 비롯한 저성장이 아니란 소리다.
얼어붙은 경제에 “저성장에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시끄럽다. `구조조정` `구조개혁` 같은 다급한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단기적이고 수동적인 대응의 경우가 많다. 경제 구조 문제에서 비롯한 저성장을 극복하려면 과거 반복해 온 처방을 답습해선 안 된다. 본원적이고 장기적인 혁신 등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한다.
`혁신(innovation)`도 마찬가지다. 혁신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면 일회성이나 1개 기업의 독자 혁신(stand alone innovation)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혁신이 지속 성장 동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기업 생태계`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혁신을 위해선 주요 대기업의 역할이 막중하다. 핵심 조직(keystone organization) 역할을 담당하면서 지속 가능한 기업 생태계 여건을 확보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생태계가 확장되고 강화될 때 핵심 조직 자체의 생존과 성장도 보장될 수 있다.
LG전자는 이를 훌륭히 해냈다. 신규 스마트폰 G5를 출시, 기업 생태계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혁신 사례를 보여 줬다.
G5는 모듈식 디자인을 채택, 소비자가 G5와 결합할 수 있는 각종 주변기기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기업이 진입해 가치 창출과 가치 획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줬다. 나아가 새로운 기업 생태계가 확장되고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몇 년째 성능 강화 등 단순한 패러다임에서 머물러 있던 스마트폰계의 혁신이 LG전자로 인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혁신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성장의 한계가 뚜렷한 산업에서 시장점유율에 집착하는 경쟁 행태, 장기 비전보다 단기성 소비자 편익에만 몰두하는 경영 방식 등 저성장의 씨앗이 도처에서 자라나고 있다. 내수 시장에만 천착하는 통신 산업이 대표 사례다. 망 위주의 안정된 사업에만 집중해 온 통신업체가 지난해부터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을 이어 오고 있다. 갈등의 양상은 몇 개월째 똑같다. 현재 시장점유율 등 정태 상황을 전제로 한 각 사업자의 이해관계 표출만 반복되고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하나인 통신은 새로운 혁신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저성장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혁신을 시도해 기업 생태계를 확장해야 하는 까닭이자 현재의 내수 시장에만 머물지 말고 폭넓은 행보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하드웨어(HW)와 망 위주 사업은 어느덧 수명이 다해 간다. 그렇다면 한국의 장점을 활용한 콘텐츠 생산과 확산을 통해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는 건설적 경쟁을 해보면 어떨까. 통신사가 구글처럼 다양한 방식의 공정한 M&A를 통해 생태계 조성 및 확장의 첨병 역할을 할 순 없을까.
정부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 문제를 놓고 심사숙고에 들어간 지 어느덧 반년이 다 돼 간다. 오래 고민한 만큼 정부는 바람직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1개 기업의 독자 혁신인지 기업생태계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시도인지 잘 판단하길 기대한다. 정부가 기존의 근시안에서 벗어나 방송·통신 융합의 세계 추세를 고려해 혁신에 나설 때, 기업의 혁신 시도를 장려해 기업 생태계 확장 및 강화를 촉진하려는 행보를 보일 때 비로소 저성장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박규호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nkhpark@g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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