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104>대기업은 절대 벤처를 이길 수 없다

Photo Image

대형 유통업체와 모바일 쇼핑몰의 가격 대결이 볼 만하다. 이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싸움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서로 손해 보는 장사를 오래할 리 만무하다. 그냥 요란하게 싸우는 척 하다가 소비자에게 가격이 싸다는 인식만 심어 주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 가격이 아닌 다른 이슈를 들고 나올 것이다. 내부로는 주 고객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는 서비스로 승부하자면서 그렇게 끝날 것이다.

아마존의 시가총액이 이미 월마트의 시가총액을 넘어선지 오래다. 사실 두 업체의 경영 실적을 보면 아직도 월마트 영업이익률이 아마존을 압도한다. 통상의 경영분석 툴로 보면 월마트 시가총액이 당연히 높아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기 때문에 아마존의 성장세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월마트가 온라인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날 월마트 주가가 폭락했다. 시장에서는 해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응이 너무 늦은 것이다.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시대다. 전통의 대기업은 구조상 빠른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찰스 다윈이 얘기한 것처럼 강한 것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시장이 이렇다 보니 경쟁심 강한 재벌이나 대기업이 이들을 꺾기 위해 신규 사업부를 만들고, 자회사를 만들고, 인수합병(M&A)을 하는 등 난리를 치지만 뚜렷이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꺾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시장에서는 오히려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끌고 가는 경우가 더 많다. 벤처 가운데 쓰러지는 기업도 많지만 이는 너무 빠르게 움직이다가 스스로 발이 엉켜서 쓰러진 것이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 가격전쟁에서도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오너가 심각하게 느끼고 대응을 지시할 때는 이미 벤처기업이 만만치 않게 성장한 뒤다. 예전에는 게임이 안 됐지만 지금은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인다. 안타깝게도 대기업 문제 인식에서 행동까지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셈이다.

대기업은 고객과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데도 왜 그렇게 대응이 늦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대기업 경영자들이 온라인 비즈니스를 잘 모른다. 새로운 디지털 벤처의 사업철학, 인사관리, 마케팅, 성과관리, IT운영방식이 대기업이 해 오던 것과 크게 다르다. 이번 경우에도 손실을 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관점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겉으로는 “파괴적 혁신” “빅뱅 혁신”을 외치지만 생각하는 것, 일하는 것은 작년과 재작년에 하던 그대로 하고 있다. 경영 목표는 으레 달성 가능하게 잡아야 하고, 모든 의사결정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리스크는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플랫폼으로, 모바일로 바뀌었는데도 그냥 아날로그 방식을 매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담당 바이어와 상품 본부장의 평가는 이익 기준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 자기평가 목표를 희생해 가며 벤처와 전략적으로 맞붙어 보자고 하는 것은 월급쟁이로서 불가능하다. 대기업의 매출목표, 이익목표는 전년 대비로 항상 완만하게 증가한다. 대기업 차원에서 대대적인 가격 경쟁은 오너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선두에 나서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의사결정 과정도 문제다. 대기업은 온갖 정보를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임원회의나 오너 책상에 올라간다. 설령 결정했다고 해도 시스템 반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업 부서와 IT 담당자가 수도 없이 회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벤처기업은 몇 명이 앉아서 곧바로 결정하고, 시스템에 대한 반영도 당일 된다. 벤처기업과 대기업은 우선 부서 간 칸막이가 없는 데서 차이가 난다. 수평이나 수직 칸막이가 없는 회사와 임원은 방에 들어가 있고 팀원들끼리도 칸막이 있는 대기업 둘 가운데 누가 더 의사결정이 빠를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대기업은 절대 벤처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다. 앞으로도 벤처기업이 많이 생기고 망하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성공하고 망하고는 자기 자신의 능력 때문이지 대기업과의 경쟁 때문은 절대 아니다. 대기업은 자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벤처기업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유통업 경쟁에서 자산의 크기는 문제가 안 된다. 유통의 성패는 절대금액이 아니라 자금회전율이 가른다. 자금회전율은 스피드에 의해 결정된다. 회사 크기가 크든 작든 스피드 빠른 기업이 항상 이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