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팹리스 반도체 업계가 크기 힘든 이유를 아십니까. 분업 생태계가 어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하우스가 팹리스 영역으로 뛰어드는 건 물론 그들 자유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호 불신만 키울 뿐입니다.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이재만 하나텍 대표는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커지는 지금이야 말로 한국 팹리스가 부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중소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간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팹리스는 생산 공장 없이 칩 설계만 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설계한 칩은 삼성전자, TSMC, 동부하이텍 같은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공장에서 생산된다. 팹리스와 파운드리간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은 바로 디자인하우스다. 팹리스가 칩 설계 코드(RTL)를 짜서 보내면 디자인하우스는 각 파운드리 업체 공정 IP에 맞춰 실제 웨이퍼 공정에 활용될 마스크 제작과 테스트 등 팹리스 분야 백엔드 작업을 맡는다. 분업 구조가 갖는 장점은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팹리스 강국으로 불리는 대만은 분업화가 잘 돼 있다.
한국은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간 상호 신뢰가 깨진 지 오래다. 잘나가던 팹리스 업체가 하나 둘 고꾸라지면서 디자인하우스가 직접 칩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팹리스는 디자인하우스에 일을 맡기기가 어렵다. ‘우리 설계를 보고 베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잠재적 경쟁자에 일을 왜 맡기나’라는 반감도 작용했다.
이 대표는 “연매출 수백억원 규모 작은 팹리스도 디자인하우스 인력을 보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이처럼 고정비가 높으면 결국 이익 규모가 줄고 설계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디자인하우스와 팹리스가 상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하나텍은 전통적 디자인하우스 역할에만 매진해 팹리스 업체를 돕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IoT 시대가 되면 다시 다품종 소량 생산 시장이 커질 것”이라며 “팹리스가 고유 설계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시장 적기 대응, 결과물 성능 극대화, 고정비 축소라는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재만 대표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출신으로 지난해 10월 하나텍을 창업하기 전 한컴지엠디(구 다윈텍) 대표로 활약했다. 스토리지 컨트롤러, 시스템온칩(SoC), 그래픽처리장치(GPU), 센서 업체를 고객사 혹은 협력사로 확보했다.
한주엽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