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임박해오면서 중견·중소기업계가 ‘신중론’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업 구조개혁에 따른 신사업추진, 해외진출 등 당장 투자가 시급한 시기인데도 상시 구조조정에 따른 ‘허리띠 졸라매기’로 인한 저성장 악순환을 우려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 총 175개 중소기업을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했다. 부실징후기업은 2년 이상 적자가 지속되면서 영업이익이 은행 대출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의 기업이 대상이다. 작년 125개 대비 40% 늘어난 수다.
다음 달 초에는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발표가 예정됐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불거진 조선, 철강, 해운 등 대규모 설비투자가 됐거나 자체 구조조정이 어려운 산업이 우선 대상이다. 이 때문에 부실징후기업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대기업 협력사인 중견·중소기업까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중기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벤처기업협회 등은 최근 2주간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윤상직 산업부 장관 등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중견·중소기업은 정부의 선제적 구조개혁에 공감하면서도 ‘좀비기업’ 인식 확산을 경계했다. 또 중소기업 수출과 연구개발(R&D)이 대기업에 비해 부진한데 계속된 자금경색으로 투자가 줄어들 것도 걱정하는 분위기다. 중소기업 제품 수출 비중은 대기업 절반 수준이며 해외 투자 총액도 현재 작년 대비 급감해 전체의 17.3%에 그쳤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소기업 자금 공급은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이뤄지는데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은행 등이 금리나 대출 조건 등을 더 불리하게 내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중소기업 대표도 “중소기업은 내수 부진으로 인한 수출 확대가 목표인데 모뉴엘 사태로 인해 수출 자금사고가 발생해 이미 시장에서는 수출자금 경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잘 되는 회사에만 자금이 몰리고 신규회사나 정작 지원이 필요한 기업에는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처기업계도 중소기업에 마치 정책자금에만 의존하는 좀비기업이 다수 있는 것으로 묘사돼 인력난이 악화된다고 호소했다. 바이오벤처 기업은 신약개발을 위한 R&D, 사업화, 임상실험 등에만 10여년이 소요되는데 이 같은 산업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은 “구조조정을 너무 강하게 하면 중소기업 발굴·육성정책을 펼친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만큼 정책에도 신중이라는 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량적 지표만이 아니라 미래경쟁력을 포함할 잠재력 평가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