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프로이트 레시피'] 피자와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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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전 세계인이 찾는 음식이 되었다. 정신분석은 비엔나에서 프로이트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심층 심리학이자 치료 방법이 되었다.

피자는 도우, 피자 소스, 토핑의 합작품이다. 도우에는 밀가루, 올리브 오일, 이스트가 들어가며 실온에서 숙성과 성형 과정을 거친다. 도우는 전체적으로 두께가 일정해야 한다. 피자 소스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토핑으로는 채소, 버섯, 과일, 베이컨, 해산물 등이 올라간다. 토핑 재료에 따라 피자의 이름이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화덕이나 오븐에서 구워낸 것을 피자라고 부른다.

정신분석가 수련 과정은 피자의 판인 도우를 만드는 과정과 많이 닮았다. 개인 분석, 문헌 공부, 지도 사례 분석을 거쳐 충분히 균형 있는 분석가로 수련되었다고 판단되면 국제정신분석학회의 자격 인증을 받는다. 자격을 인증받은 분석가는 그 후에도 스스로 공부를 꾸준히 하고 경험을 쌓아서 자신이 만들어낸 ‘정신분석 도우’의 맛이 더 깊어지도록 ‘분석 소스’를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에게 제대로 된 판을 제공할 수 있다. 분석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다양한 과거와 현재를 경험했으며 그들이 표현하는 증상과 갈등은 피자 토핑처럼 각양각색이다.

피자를 화덕에서 타지 않게, 설익지 않게 잘 구워내려면 일정한 환경에서 일정한 온도와 방법을 지켜야 한다. 정신분석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해진다. 도우 없는 피자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정신분석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분석이 아니다.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하고 분석가의 중립성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환자와 분석가는 서로 경계를 지켜야 한다. 너무 멀어서도 안 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환자와 분석가가 경계를 넘으면 윤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정신분석의 역사를 보면 자신이 분석하던 환자와 너무 가까워져 생긴 ‘경계 침해’ 사례들이 지금도 기록으로 전해 내려온다. 놀랍게도 칼 융, 산도르 페렌치, 어네스트 존스와 같이 프로이트의 측근이었던 저명한 분석가들이 저질렀던 실수들이다. 프로이트 자신도 경계를 잘 지키지 못했는데 그런 사례들에 지나치게 개입해서 오점을 남겼다.

지금도 정신분석학의 역사에 크게 공헌했다고 인정받고 있는, 아니면 칼 융처럼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그런 역사적인 인물들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당시는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 생기는 전이와 역전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환자도, 분석가도 분석의 틀 안에서 그런 현상을 이해하고 활용하기보다는 틀 밖으로 뛰쳐나가 감정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전이란 환자가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의 분석가에게 옮기는 심리적 현상이고, 역전이는 분석가가 환자에게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도우’는 너무 두꺼워도, 너무 얇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가 분석가에게 투사하는 모든 것을 잘 담아내고 반응하고 분석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너무 두꺼우면 둔해지고, 너무 얇으면 허물어진다. 담아낸 것의 의미를 이해해서 환자에게 해석해주기 위해서는 도우가 푸석푸석하지 않게, 탄력을 유지해야 한다. 도우에 구멍이 나서 피자 소스가 새어나가고 토핑이 흩어지고 있다면 경험 많은 분석가의 도움을 받아서 구멍을 메워야 한다. 분석 과정에서 환자가 올려주는 ‘토핑’의 맛과 냄새를 파악하기 힘들거나 잘 소화시키기 힘에 부칠 때도 역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상한 도우로 피자를 만드는 집’에 가고 있다면 빨리 제대로 만드는 다른 집으로 옮겨야 배탈을 예방할 수 있다. ‘맛이 상한 피자’도 익숙해지면 외면하기 힘들어진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정도언]

-정신과 전문의, 수면의학 전문의.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교육 및 지도 분석가).

-국제정신분석학회 산하 한국정신분석연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프로이트 레시피(웅진리빙하우스, 2015.0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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