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은 ‘혼자서 중얼거리는 행동’이다. 배우가 상대역 없이 혼자 말하는 행위이며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주인공의 독백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멋있다. 독백의 백미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고 하는 <햄릿>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 왕자의 그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혼자서 먹을 것인가, 어울려 먹을 것인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혼자 먹는 밥은 독백이다. ‘혼자 먹느냐, 같이 먹느냐’ 하는 갈등의 고독한 결과물이다. 늘 그러기가 쉽지 않아 나가서 먹어보기도 한다. 그것도 쉽지 않다. 식당 문 밖에서 서성이며 들여다보고 눈치를 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혼자 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식당은 드물고 귀하다. 주인에게 돈이 안 된다. 두 사람이 먹을 음식을 혼자서 시킬 수도 없다. 안내받는 자리는 야박하게도 구석이거나 화장실에 가깝다.
주변 시선도 부담스럽다. 하릴없이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의 시선이 따갑다. 지금 나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왜 혼자 왔을까?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나? 오죽하면 혼자일까? 그런 질문들이 내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환청이 들릴 것 같은 두려움마저 몰려온다. 일부러 바쁜 척한다. 오지도 않은 문자나 이메일을 바쁘게 확인한다. 쓸데없이 잘 걸려오던 전화마저 이럴 때는 조용하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내려놓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 찌개 간이 짜지만 불평할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서둘러 대충 먹고 황급히 식당을 나온다. 이 식당에 다시는 안 올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이런 식당도 드물지만 있기는 하다. 거기서는 누군가와 같이 온 것처럼 넓은 식탁에 혼자 온 사람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같이 와서 먹는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집에서 식구들끼리 먹어도 대화를 안 하지 않는가. 찾아가서 경험해본다. 혼자 먹는 민망함은 사라졌지만, 낯선 사람과 같이 먹는 민망함이 새로 찾아온다. ‘대한민국은 대단하다! 최신 트렌드가 수입되었네!’라고 감탄하며 부지런히, 그러나 그때 그 식당 화장실 옆 식탁에서보다는 조금 여유 있게 수저를 놀린다.
미국 뉴욕 시 맨해튼의 ‘해변 식당(이름만 그렇지 시내 중심에 있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저녁에 바닷가재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 그날은 혼자 온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로 식당이 붐빈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미국 문화에서도 혼자 하는 식사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이제는 일인 가족으로 사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언젠가 내 선생님께서 “혼자서 식사하고 혼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우선 평균수명과 이혼율의 증가를 들 수 있다.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일찍 집을 떠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혼자 먹는 밥에도 장점은 있다. 단출하고 간편하다. 식은 음식 데우기는 이제는 일도 아니다. 전자레인지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정말 요긴하고도 위대한 발명품이다. 예전에는 불로 데웠지만 지금은 손가락만 좀 움직이면 된다. 혼자 먹는 밥은 외롭지만 자유롭다. 상대방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잠옷 바람이라 해도 상관없다. 정 외로우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로 분위기를 띄우면 된다. 식사에 집중하려면 라디오가 더 좋을까.
혼자 먹는다고 완벽하게 소외된 것은 아니다. 돈이 될 것 같으니까 식품이나 가전제품 회사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에게 눈치 빠르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신제품을 개발해서 팔려고 애를 쓰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정도언]
-정신과 전문의, 수면의학 전문의.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교육 및 지도 분석가).
-국제정신분석학회 산하 한국정신분석연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프로이트 레시피(웅진리빙하우스, 2015.0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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