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앞다퉈 12인치 첨단 반도체 팹(공장) 구축에 나섬에 따라 중국이 반도체 생산 메카로 거듭났다.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중국행이 속도를 내면서 대만 반도체 산업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팹리스(반도체설계)·파운드리 간 협업 구도가 중국에서도 구축될 전망이다. 이미 중국 대형 팹리스 업체가 출현한 상황에서 첨단 제조 기반까지 갖춘다면 중국은 반도체 설계·제조·시장 등 생태계 모든 요소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 반도체 설계 기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 우려 목소리가 높아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파워칩은 최근 중국에서 LCD용 드라이버IC를 생산하기 위해 12인치 팹 공사에 착수했다.
중국 허페이시 정부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135억3000만위안(약 2조3830억원)을 투입했다. 대형 LCD용 드라이버IC를 0.15㎛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월 4만장 웨이퍼 분량으로 2017년 가동이 목표다. 중국 BOE 디스플레이에 적용할 드라이버IC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UMC도 지난해 말 중국에 12인치 팹을 건설키로 결정하고 쑤저우에 월 6만~7만장 규모 팹을 확보했다. 현지 파운드리 기업 헤지안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을 설립, 추진했다.
UMC는 중국 샤먼시 인민정부와도 제휴해 지난 3월 12인치 팹 건설을 시작했다. 5년간 총 62억달러(약 6조9800억원)를 투입하며 UMC는 이 중 13억~14억달러를 지불한다. 내년 4분기 가동을 시작해 2017년 1분기에 월 1만~2만장 웨이퍼를 생산할 계획이며 40나노와 55나노 공정을 적용한다. 현지에서는 UMC가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확대하고 28나노 공정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TSMC도 상하이 내 위치한 쑹장공업지대에 8인치 팹을 확보하고 월 10만~11만장 웨이퍼를 생산 중이며 12인치 팹을 중국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 대표 파운드리 기업도 생산능력을 확대한다. SMIC는 상하이와 베이징에 각각 12인치 팹을 보유했으며 베이징 팹 생산량을 월 1만장 추가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2개 팹에서 월 5만장 웨이퍼를 생산한다. 선전에 새로 마련한 8인치 팹은 4분기 가동을 앞뒀다.
파운드리 기업이 중국에 팹을 건설하는 것은 현지 팹리스 기업 증가는 물론이고 자체 설계한 반도체 생산량이 지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지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기술력을 쌓으며 하이실리콘, 스프레드트럼 같은 기업을 배출했고 수입에 의존하는 반도체를 국산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 트렌드포스 보고서는 중국 팹리스가 세계 반도체 판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7.1%에서 2015년 18.5%까지 증가해 연평균 2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 보고서는 향후 3년간 중국에서 가장 많은 파운드리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지 팹리스 기업이 생산하는 칩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적 파운드리 기업이 중국에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28나노미터 공정은 물론이고 첨단 14·16나노 공정 기술을 중국에 적용하는 게 현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현지 기업과 전략적으로 협업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고 지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것도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대만에서 미디어텍 등 글로벌 팹리스 기업이 다수 탄생한 것은 현지 파운드리 기업과 팹리스 간 철저한 협력 생태계를 구축한게 주효했다”며 “중국 팹리스도 현지에 들어서는 파운드리 기업의 앞선 기술력을 습득하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기술 수준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 팹리스 생태계가 약한 것은 국내 파운드리와 협력이 제한적인 것도 영향이 크다”며 “이미 중국 팹리스에 뒤처진 상황이어서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