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SK그룹에 인수되기 전 하이닉스반도체는 과도한 차입금, 높은 부채비율, 7분기 연속 적자 등 잇달아 위기를 겪었다. 폭락하는 D램·낸드플래시 시장을 견디며 힘겹게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았지만 공격적으로 선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하지 못했다.
SK그룹에 인수된 뒤 SK하이닉스는 수조원에 달하는 빚을 과연 갚을 수 있을까 싶던 시장 걱정을 깨고 완연한 성장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아 세계 D램 시장 2위로 올라서는 성과도 만들었다. 하이닉스반도체 시절 136원에 그쳤던 주가는 지난해 7월 장중 최고가 5만2400원을 기록할 정도로 가치가 높아졌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매출 17조1260억원, 영업이익 5조1090억원을 달성하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 영업이익은 51% 늘었다.
발목 잡았던 차입금 비중도 크게 줄었다. 2008년 순차입금 비율(현금 대비 차입금 비율)은 2008년 127%에 달했으나 지난 1분기 마이너스로 줄었다. 꾸준히 현금자산을 쌓은 결과 빚보다 현금이 많아졌다.
차입금은 지난 2분기 기준 3조7580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4분기 4조원대에서 올 2분기 3조원대로 떨어진 셈이다. 차입금 비율은 4분기 23%에서 2분기 19%로 낮아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다시 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아직 스스로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 2위(27.7%)지만 45.1%로 안정적 1위를 유지하는 삼성전자와 약 17%P 격차가 난다. 낸드플래시는 더 갈 길이 멀다. 삼성전자(35.3%), 도시바(28.8%), 마이크론(20.6%)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SK하이닉스 낸드 점유율은 15.2%에 불과하다. 1위 삼성전자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가 매 분기 새로운 실적 기록을 경신하면서도 ‘본원의 경쟁력’에 집중하겠다며 지속적으로 위기의식을 강조한 것은 지난 15년 이상 경영 위기를 겪으며 생존에 매달려야 했던 뼈아픈 과거 때문이다. 자칫 한 눈을 팔면 다시 과거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도 SK하이닉스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팹을 가동하는 만큼 파운드리 사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분석한다. 이미 소규모로 시스템반도체 분야 파운드리를 시작했지만 초기 단계인 만큼 전문인력과 비용을 더 투입해 파운드리 공정 기술 경쟁력을 쌓는 것이 숙제다.
메모리에 치중한 사업 구조를 비메모리인 시스템반도체로 확산해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오랜 연구개발 끝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시스템반도체에서 올해 성과를 낸 것처럼 SK하이닉스도 잘할 수 있는 분야와 제품을 발굴해 더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영난을 겪던 시절 함께 고통을 나눈 반도체 장비, 소재, 설계 등 중소 협력사와 생태계를 조성해 함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전략도 필요하다. 최근 협력사와 임금 인상분을 공유하는 ‘임금 공유제’를 시작한 것도 긍정적 신호탄이다.
반도체 후방 기업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을 감안해 첨단 기술을 함께 개발해 성장하고 이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