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과학 인재 양성, 21세기 과학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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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AIST에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 4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독일 ‘2015 레드닷디자인 콘셉트 어워드’에서 배상민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대상과 본상 2개를 수상한 것이다. 대회 개최 목적은 명확하다. 미래를 선도할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를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을 이뤄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심사 기준에 가장 훌륭하게 부합한 작품이 바로 배 교수의 ’박스쿨(Boxchool)‘이었다.

박스(Box)와 학교(School), 두 단어를 합쳐 이름을 지은 이 작품은 물품 수송 용도로 쓰이는 컨테이너 박스를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학교 교실로 바꿔놓은 작품이다. 전자칠판, 프로젝터 등이 갖춰진 스마트교실이자 태양광 패널, 빗물 정수 시스템을 탑재해 독립적인 건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배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봉사와 연구활동을 하며 박스쿨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소외된 지역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소외지역에 산적한 문제 중에 학교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 이유를 “교육으로써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 교육은 소외지역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자립시키는 가장 근본적이자 현명한 수단이다.

나는 박스쿨(Boxchool)에 담겨 있는 가치관을 21세기 과학 비전이자 과학 교육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과학교육이 뛰어난 머리를 가진 과학자를 길러내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창의와 도전 정신 그리고 따뜻한 가슴을 겸비한 과학자를 키워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장 한계에 봉착한 세계 경제 상황과 연관지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사회는 양적인 성장이 필요했다. 이공계 교육도 그에 맞춰 노동, 자본, 기술을 기초로 교과 과정과 학습 환경을 설계해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교육으로는 21세기가 당면한 난관을 뛰어넘을 수 없다.

활로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공계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 새로운 형태 과학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와 기업가정신으로 훈련된 과학자를 양성한다면 그들이 혁신적 아이디어와 창조성에 기반을 둔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그 결과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도전적으로 개척한다면 미래 세대가 살아갈 새로운 시장도 함께 형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를 위한 과학 기술 교육은 무엇을 중심으로 바꿔나가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키워드는 ‘사람’이다. 배상민 교수는 특화된 교육을 받은 1% 학생들이 다른 99%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극적이라고 얘기한다.

범세계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아이디어에 연구자의 진심어린 노력을 보태는 것. 아마도 세상을 바꾸는 연구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과학 교육과 인재 양성은 나 개인만의 고민이 아니다. 세계 사회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다. 오는 10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에서도 이 내용이 다뤄진다.

57개 국가 장차관,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 수장들, 노벨상 수상자, 글로벌 기업 CEO를 포함한 정상급 인사 3000여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과학 인재 교육을 위한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

새로운 과학기술 교육 지향점을 모색하고 창조경제와 혁신의 토대가 되는 바람직한 교육상을 제시하는 가치론적 접근과 각 대학이 국경을 넘어 협력해 범세계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한 제도와 프로그램을 구축할 방법론적 접근을 아우르는 토론이 이뤄질 것이다.

과학은 21세기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더 풍족한, 더 편안한, 더 안전한, 그리고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이요 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 역시 과학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 막중한 책임을 이행하는 시작은 새로운 형태 과학 교육과 세계관을 겸비한 인재 양성에 있을 것이다.

강성모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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