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18〉알고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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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옥스퍼드 사전은 그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이 여론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탈진실의 가장 첨예한 실험장이 되었다.

선거철마다 디지털 광장은 들끓는다. 유튜브마다 폭로가 넘쳐나고, 커뮤니티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뒤덮인다. 이 혼돈은 우연이 아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의 산물이다. 문제는 그 설계자가 국민도, 언론도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여론을 사실상 지배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알고리즘이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은 단 하나의 원칙, '참여 극대화'로 움직인다. 인간은 분노·공포·혐오에 가장 강하게 반응하며, 알고리즘은 이 본능을 정확히 겨냥한다. 여기서 두 가지 치명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첫째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다. 우리가 무심코 누른 클릭 몇 번으로 사용자의 편향성을 감지한 알고리즘이 유사한 콘텐츠를 계속해서 노출하는 현상이다. 둘째는 '에코챔버(Echo Chamber)'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SNS 안에서 유사한 의견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자기 신념이 강화되는 현상이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전제인 '합리적 시민의 판단'이 조용히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문제에 특히 취약하다.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유튜브 이용시간 OECD 최상위권인 나라에서 알고리즘의 영향력은 깊고 빠르게 파고든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 유튜브의 구조다. 조회 수가 곧 수익이 되는 환경에서 균형 잡힌 시각은 외면 받고, 극단적 주장은 알고리즘의 날개를 달고 증폭된다.

문제는 이것이 국가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교란한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이 배양한 분노가 정치의 의제를 설정하고, 정치인은 그 분노에 올라타 지지층을 결집시킨다. 숙의와 타협이 사라진 자리에 진영 대결만 남는다. 입법은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행정은 실시간 여론의 압박 속에 중심을 잃는다. 결국 편리함을 가장한 알고리즘이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권력이 된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대형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 공개를 의무화하고, 허위정보 확산에 대한 플랫폼 책임을 법제화했다. 핀란드는 초등학교부터 뉴스와 정보의 진위를 스스로 판단하는 교육을 필수 과정으로 운영해 세계 최고 수준의 가짜뉴스 저항력을 길러내고 있다.

넥스트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공론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대형 플랫폼 알고리즘에 대한 최소한의 투명성 원칙이 마련돼야 한다. 시민이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추천받는 지조차 모른채 여론이 형성되는 구조는 건강한 민주주의라 보기 어렵다. 둘째,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고 정보의 진위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학교 교육에서부터 길러야 한다. 가짜뉴스와 편향 정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어는 검열이 아니라 시민의 판단력이다. 셋째, 정치 역시 알고리즘의 분노 동원 정치에서 벗어나 숙의와 정책 중심의 공론장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 광장의 입구를 열고 닫는 것은 알고리즘이다. 이 광장에서 이뤄진 선택을 과연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 넥스트 거버넌스는 디지털 광장의 주권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알고리즘이 시민의 사고를 대체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방향 역시 시민이 아니라 시스템이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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