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과학, 이번주엔]천재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생 마쳐

1977년 6월 16일,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해외에는 벤자민 W. 리 또는 벤 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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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학교에서 화학반 활동을 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검정고시로 대학입학 자격을 얻은 이 박사는 1952년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한 학기 수업을 받은 뒤 전공보다 물리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 물리학과로 전과하려 했으나 허용되지 않아 독학으로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대 물리학과에 들어간다. 물리학 공부에 심취해 1년 반 만에 물리학과를 최우수로 졸업하고 피츠버그대 대학원에 진학한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로 옮겨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임명된다. 한국인 최초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이 되고 펜실베이니아대 정교수,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학 연구부장 겸 시카고대 교수 등을 거친다.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했고 1970년대 물리학계의 큰 쟁점이던 쿼크(Quark)와 참(Charm)이론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해외 학계에는 이 박사의 천재적 연구성과가 널리 알려져 있다. 노벨상 수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9년에 토프트와 벨트만이 노벨상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1979년에는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이론의 가치를 밝혀 와인버그, 글래쇼, 살람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에 국내에는 이 박사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소설이 잇따라 출간되며 재조명받았다. 공석하의 ‘소설 이휘소’와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인데 한국의 핵 개발을 도운 것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이 박사는 사실 개발도상국, 특히 독재체제하의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하는데 매우 비판적이었다. 소설 내용에 이 박사 유족이 강하게 반발했고 출판금지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소설이 허위임은 인정하면서도 명예훼손은 인정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