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불과 몇십년 전인 20세기에, 혹독한 운명 앞에서 한을 혼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두 문중간의 묵은 갈등에서 비롯된 한에서 출발한다. 조상이 물려준 유훈은 후손들에게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문중을 하나로 묶는 고리 역할을 해준다. 반면 새로운 인식 변화는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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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 사고로 접근했던 두 집안의 일탈된 행동으로 맺어진 혼인이 한 여인의 가슴에 첩첩한 한을 심어주고 만다. 여인은 서려오는 한을 달래기 위해 소리를 접하고 찾게 된다. 한을 달래는데 소리만큼 좋은 소재가 없고 주변 곳곳에 소리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순탄하지 못하고 신분 차별을 겪으며 또 다른 한을 만나게 된다. 결국 여인은 좌절하며 한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그리고 2부에서 여인의 딸이 엄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혼을 찾고, 숱한 좌절과 방황 속에서 마침내 대 명창을 만나게 된다. 결국 삼대에 가서 명창의 꿈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다.
작품의 가치는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한국 근대사에 담긴 비극의 의미, 당시의 문화와 사상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데 있다. 철저한 고증과 자료수집으로 사실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맛깔 나는 전라도 사투리와 ‘남도의 소리’,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순우리말이 주는 ‘읽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불과 수십여 년 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여성에게 혹독한 삶을 강요했던 시대 상황 하에서, 우리 여인네가 품은 한을 어떠한 방식으로 승화시켰는지 지켜보는 데 있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가혹한 비극의 역사를 견디게 한 밑바탕이 된 여인의 삶에 경의와 찬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쏟아져 나오는 책은 많지만 읽을거리가 없다고 탄식하는 독자들이 많다. 대하소설의 참 맛을 알고 정말 제대로 된 작품을 읽어볼 요량이라면, 깊어가는 가을밤에 홀로 앉아 ‘소리’를 읽을 것을 권한다.
지음 정상래. 펴냄 행복에너지. 가격 8000원. 제공:유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