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80년대 후반 자국기업 도시바기계가 옛 소련에 공작기계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전략물자 관리규정을 어긴 것이 드러나 홍역을 앓았다. 수출품이 공산권 잠수함 프로펠러 제작에 쓰인 것으로 확인돼 외교문제로 확산됐다. 결국 당시 총리가 공식 사과하고, 도시바기계 최고경영진이 사임했다.

이후 일본은 전략물자 관리문제에 적극 대응했다. 중장기 계획하에 정부가 전략물자를 일일이 통제하기보다 수출기업 자체 관리 역량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뒀다.
1989년엔 수출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는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가 설립됐다. CISTEC은 민간기업의 전략물자 관리 역량 향상을 집중 지원했다.
자율관리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일본 정부는 2010년 아예 수출기업에 전략물자 관리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정했다. 경제산업성 안전보장무역국제실의 시모카와 테츠야 사무관은 “전략물자는 대량 파괴무기 제조·개발 등에 쓰이면 기업에 큰 타격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 요인”이라며 “수출기업에 리스크 관리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은 수출기업의 전략물자 관리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이 때문에 CISTEC은 2년 전부터 수출기업을 상대로 전략물자 판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후지모토 오사무 CISEC 조사연구부장은 “서비스 신청기업이 대부분 비회원 중소기업”이라며 “중소기업의 전략물자 관리 역량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과제”라고 전했다.
신기술 등장으로 전략물자 개념이 복잡해지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 CISTEC에서 열린 한·일 수출기업 간담회에서 일본 참석자는 한국 측에 클라우드 서비스 전략물자 개념을 질의했다. 클라우드 특성상 데이터 서버가 해외에 위치할 수 있는데 기술 수출 범위를 어디로 규정할지 모호한 탓이다.
상대적으로 전략물자 관리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이 같은 일본의 경험을 무조건 뒤따르기보다는 성과와 과제를 비교하며 최상의 모범답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수출기업은 상당수가 관계 기관에 기대지 않으면 전략물자 해당 여부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들 기업에 관리 책임을 오롯이 전가하거나 혹은 일방적인 지원만 남발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자율준수 역량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칫 정책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소규모, 수출 초보기업 지원도 빠져선 안된다.
기업 차원에서도 개선 노력이 시급하다. 전략물자 관리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담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내 수출기업 중 전담 조직을 운영하는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전담 조직을 갖춘 두산인프라코어의 고광모 전략물자관리팀 차장은 “복잡한 전략물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담 조직과 전문인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전략물자 관리에 관심을 갖는 것도 요구된다. 추광현 히타치엘지데이터스토리지코리아 수출관리사무국 차장은 “회사 내부적으로는 최고경영진과 임직원이 전략물자 관리에 관심을 갖고, 외부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전략물자의 중요성을 인식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일본)=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