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은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으로 발생한다. HIV에 감염되면 몸 속 면역세포인 T-림프구가 파괴돼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 때문에 각종 감염성 질환과 종양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HIV 바이러스는 성적 접촉, 수혈이나 혈액 제제, 병원 종사자가 바늘에 찔리는 등 사고로 전파되는 경우가 있고, 모체에서 신생아에게로 전파되기도 한다. 전 세계 4500만명이 감염돼 연간 300만명 가량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연구진이 HIV 바이러스의 RNA를 직접 분해, 감염을 억제하는 효소를 발견해 새로운 AIDS 백신 개발 실마리를 찾았다. HIV처럼 RNA를 유전체로 갖는 다른 레트로바이러스 억제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RNA종양 바이러스 등으로 적용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안광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은 아미노산 단백질 ‘SAMHD1’이 RNA 분해 효소 활성을 갖고, HIV-1 유전체 RNA를 선택적으로 분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HIV-1 백신 개발 난제로 꼽혔던 RNA 돌연변이 문제에도 실마리를 제시했다. HIV-1은 빠른 속도로 RNA 유전체에 돌연변이가 생겨 면역체계를 회피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항-HIV 약품에 내성을 가진 HIV 균주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이 때문에 AIDS 치료에는 하나의 약물을 쓰지 않고 세 가지 종류의 약을 처방하는 이른바 ‘칵테일 기법’을 사용해왔다.
반면 연구진이 발견한 SAMHD1은 HIV RNA 염기서열과 관계 없이 HIV를 인식했다. 돌연변이가 나와도 효능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향후 안정적 백신 설계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SAMHD1의 작용 기전도 밝혀냈다. 연구진은 세포 내 염기 농도가 분해효소 활성화 여부를 조절해 감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염기 농도가 낮아지면 분해효소 활성이 높아져 감염이 억제됐고, 반대로 높아지면 SAMHD1이 비활성화됐다.
염기 농도가 SAMHD1 활성 조절인자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현재 시판 중인 항-HIV 약품들이 염기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관련 연구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 교수는 “HIV가 빠른 속도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효과적인 백신 개발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돌연변이와 상관없이 RNA를 분해할 수 있는 SAMHD1의 기전 규명이 새로운 백신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SAMHD1 발현 활성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것이 실용화를 위한 과제로 제시됐다.
미래창조과학부·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 21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