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반도체 업계를 들쑤셔놓았던 삼성전자 기술유출 사건 관계자들이 최근 2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1심에서 집행유예·벌금형을 받았던 일부 피고인들마저 무죄로 번복되면서 역대 최악으로 여겨졌던 반도체 기술유출 스캔들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악의 중간 성적표를 받아든 검찰은 물론이고 기술유출 사건을 빌미 삼아 협력사 관리를 강화했던 삼성전자에 대한 비난론이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23일 전자신문이 법원 판결문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20일 열린 삼성전자 기술유출 사건에 관한 2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 18명에게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각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유출 사건은 지난 2010년 2월 검찰이 미국 반도체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임직원 18명을 기소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검찰 발표에 의하면 관련자들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40건을 포함한 총 95건의 삼성전자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삼성전자에 반도체장비를 납품하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직원들이 삼성전자 기술을 빼내 삼성전자 경쟁사인 하이닉스에 넘겼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이 유출된 데다 그것도 글로벌 장비업체 직원들이 경쟁사 직원과 공모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피해규모도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2차 피해를 감안하면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삼성전자는 이후 기술 보안을 이유로 협력사 관리·감독을 강화했고,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와는 민사상 합의를 통해 장비구매 리베이트, 서비스 우선권 등 유무형의 혜택을 받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협력사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작은 요란했지만 재판을 거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6명만이 혐의가 인정돼 집행유예·벌금형 등을 받았다. 나머지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어 최근 열린 2심에서는 피고인 18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곧바로 상고장을 제출함에 따라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지만 현 상태로는 삼성전자와 검찰 모두 난감한 상황이 됐다.
관련된 회사들은 판결에 대해 언급을 자제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코리아 관계자는 “법원에 계류 중인 사안이어서 구체적으로 얘기할 바는 없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SK하이닉스 측은 “개인에 관한 소송으로 회사가 말할 바는 아니다”며 “다만 개인들의 소송 결과가 잘 나온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3일 오후 현재 본지 질의에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