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파운드리(Foundry)’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생산할 파운드리를 변경했다’ ‘파운드리 업체 동부하이텍이 매각 절차를 밟는다’ 등 정보기술(IT) 관련 뉴스에 곧잘 등장합니다. 파운드리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공장’이라고 해석되는데요. 물론 맞는 말이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파운드리는 단순한 공장을 넘어 하나의 산업을 뜻하는 용어로 통합니다. 그것도 한 해 40조원을 훌쩍 넘는 엄청나게 큰 산업이죠. 그럼 파운드리가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Q:파운드리는 ‘공장’과 다른 것인가요?
A:파운드리 역시 공장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파운드리는 엄밀히 말하면 ‘반도체 파운드리’입니다. 그것도 역시 ‘반도체 공장 아닌가’라고 되물을 법한데요.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는 공장만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반도체 기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반도체 설계에서 생산·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종합반도체업체(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반도체 공장 없이 설계와 판매만 하는 ‘팹리스(Fabless)’, 마지막으로 설계나 판매는 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위탁 생산만 하는 ‘파운드리’입니다. 파운드리는 바로 반도체 위탁 생산 전문업체를 뜻합니다.
가령 청바지를 만든다고 하면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있고 디자인을 넘겨받아 옷을 만들고, 완성된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파운드리는 다른 사람이 제공한 디자인(설계도)을 바탕으로 옷(반도체)을 만든 후 판매자에게 공급하는 쪽에 해당합니다. 파운드리 중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IDM이면서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고, 대만 TSMC처럼 파운드리 사업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 TSMC 같은 곳을 일컬어 ‘퓨어(Pure) 파운드리’라고 하기도 합니다.
Q:그럼 파운드리는 ‘반쪽’ 반도체 기업인가요?
A:‘반쪽’이라기보다는 ‘전문’ 업체로 보는 게 맞습니다. 반도체는 현대 과학기술의 집약체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입니다. 제품을 설계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설계도대로 만드는 것도 어려운 작업입니다. 또 반도체 생산라인을 지으려면 수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시험 범위가 넓으면 분야별로 나눠 함께 준비하는 것처럼 반도체 산업에서 분업 체계를 취한 것이 파운드리입니다. 반도체 설계업체 측면에서는 생산라인은 외부에 맡기고 본연의 설계 역량 강화에 집중할 수 있으니 유리합니다. 파운드리는 설계와 판매 걱정 없이 생산라인 효율화에 주력하며 매출을 올리니 좋습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 TSMC는 지난해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운 20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Q:파운드리도 불경기가 있나요?
A:모든 시장이 그렇듯 호황기가 있으면 불경기도 있습니다. 또 선두 업체가 있으면 하위권 업체도 있기 마련입니다. 파운드리 전문 업체는 대규모 생산라인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주문량이 줄어들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치명적입니다. 공장 유지비용이 쌓이면 그대로 회사 손실이 되는 탓이죠. 그래서 파운드리 업체는 반도체 경기 흐름을 살피며 적절한 타이밍에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고도화합니다. 고객에 해당되는 IDM이나 팹리스의 기술 발전 동향도 주시해야 합니다. 파운드리의 생산라인 투자는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곤란합니다.
요즘 파운드리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는 분위기입니다. 1위 기업이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2~4위 업체가 나머지의 절반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더 많이 생산할수록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니 선두 업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1위는 없는 법이니 앞으로 파운드리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다 함께 지켜봐야겠습니다.
◇‘(쇼클리가 들려주는) 반도체 이야기’ 류장렬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접합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본격적인 반도체 시대를 여는 데 공헌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쇼클리가 들려주는 반도체 이야기를 담았다. 원자의 개념부터 도체, 부도체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반도체 기술의 전반적 원리를 습득할 뿐 아니라 이를 발전시키는 방법까지 생각하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다양한 정보와 보충 설명에 손쉬운 이해를 돕는 유머러스한 그림과 만화를 곁들였다. 청소년들을 위한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제118권으로 나왔다.
◇‘반도체 비즈니스 제대로 이해하기’ 강구창 지음, 지성사 펴냄.
‘반도체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판매되는가’라는 표지의 설명 문구처럼 복잡한 반도체 산업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다. 반도체 산업의 형태, 반도체 회사의 종류, 반도체 사업 형태에 따른 업무 영역 등 반도체 산업의 구체적인 현황과 구성 체계를 소개하고 있다. 반도체 비즈니스와 관련된 오해와 궁금증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담겨 있다. 반도체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기술적인 부분을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