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통’ 하면 백화점, 할인점, 전통시장, 집단상가 등을 떠올렸다. 중간 유통 단계는 매우 복잡하지만 실제 판매 채널 형태는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TV홈쇼핑, 인터넷쇼핑몰을 필두로 판매 채널이 다변화하면서 유통 단계와 함께 유통 구조에도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복잡한 단계를 생략하고 1차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채널이 강세를 띠었고, 그 중심에 인터넷 전자상거래가 굳건히 자리 잡았다. 유통의 전문화 및 세분화도 함께 진행됐다. 경매 방식을 온라인에서 구현한 옥션 같은 회사는 비즈니스 모델 하나로 떼돈을 벌었다. B2C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B2B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면서 성공 신화가 이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PC 기반 인터넷을 매개로 한 빅뱅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뒤 2000년대 중반까지 유통시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혼재 모델로 재편돼 차분한 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가격과 편의성을 메리트로 한 온라인 유통으로 트렌드가 쏠리면서 오프라인 유통의 영향력 축소는 더 이상 막기 어려운 대세로 굳어갔다.
그리고 2000년 후반 스마트폰 확산과 함께 떠오른 모바일커머스는 유통시장에 대변혁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특히 오픈마켓과는 다른 독특한 모델로 승부수를 던진 소셜커머스 업계는 2010년 잇따라 설립된 이래 단기간에 의미 있는 매출을 확보하는 등 국내 유통시장에서 신선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모바일커머스의 확산은 홈쇼핑, 오픈마켓 뿐 아니라 백화점, 양판점 등 국내 전통 유통 강자들의 위기감에 기름을 부었다. 모바일 거래가 기존 온오프라인 시장을 잠식하며 급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통의 전통 강호들조차 모바일커머스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기존 유통 채널 간 경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것도 상징적인 변화다.
환경이 급변하는 분야일수록 위험 요소와 함께 기회 요인도 커진다. 요동치는 지금의 유통 상황이야말로 창조적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뜨리는 사업모델이 속속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PC 기반의 인터넷 전자상거래 도입기에 그랬듯이, 모바일 전자상거래가 유통구조 개편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창업 모델이 급증하고 있다. 신유통 채널이 등장하면 플레이어들이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쇼핑 앱과 IT인프라 등 유통 지원 인프라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벤처 투자 자금이 게임 쪽에서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이나 인프라 구축 기업에 몰리고 있다. 해외 직접 구매(직구)나 큐레이션 등 세분화된 특화 사업이 타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합종연횡과 도태가 진행돼 다시 유통 산업에 새 질서가 안착되겠지만, 비즈니스 모델 진화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창조경제 구현의 밑거름이 된다.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도전하는 것을 창업(비즈니스 크리에이티브)이라 부른다. 단순히 소매점 하나를 더 내는 개업(비즈니스 오프닝)과는 국가경제 기여도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창조적 노하우와 양질의 일자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창업은 이번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꽃이다. 차별화된 형태의 비즈니스 도전 모델이 존재하는 곳. 유통이 창조경제의 보고(寶庫)인 이유다.
전자자동차산업부장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