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 설을 며칠 남겨두지 않았다. 음력으로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을 맞아 기나긴 귀경길을 참고 고향을 찾는 이들은 모두, 고되지만 그동안 그리웠던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을 가슴 한편에 지고 있을지 모른다. 가족뿐 아니라 평소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는 친척이나 고향 이웃사촌, 동창을 찾아 설을 쇠러 떠난다. 차례를 지내고 아이는 웃어른께 세배를 한다. 기특한 마음으로 앞으로 잘 자라라는 의미에서 쥐어주는 세뱃돈에 아이들은 웃는다. 지금은 바쁜 생활에 곧 고향을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가족과 친척이 모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른들의 술자리도, 아이들의 세뱃돈 경쟁도 아닌 전통놀이 `윷놀이`가 주인공이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다. 유교 사상이 짙었던 조선시대는 남녀가, 그리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긴다는 이유로 윷놀이를 천한 놀이로 치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가족 누구나가 함께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윷놀이 유래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조상들은 삼국시대부터 윷놀이를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고구려 시대 윷놀이 장면이 그려진 왕릉 그림도 존재한다. 고구려 유적에는 석인상에 새겨진 윷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윷판은 경북, 충북, 서울 등 바위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부 조선학자는 중국 놀이인 저포와 윷놀이가 같거나 발전한 것이란 의견도 있다.
나무 토막 네 개와 종이로 그린 판, 서로 구분할 수 있는 돌(말)만 있으면 윷놀이를 시작할 수 있다. 앞뒤 모양이 다른 윷(가락)을 던져 `도` `개` `걸` `윷` `모` 다섯가지 경우가 결정되면 이에 따라 말을 옮겨 입구에서 출구까지 빨리 도착하는 팀이 이긴다. 도는 한칸, 개는 두칸, 걸은 세칸, 윷은 네칸과 윷가락을 한번 더 던질 수 있는 기회, 모는 말을 다섯칸 이동시키고 한번 더 던질 기회를 준다.
윷놀이에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상징한다. 도가 가장 짧은 거리를, 모가 가장 긴 거리를 한 번에 간다는 것에서 각 동물이 달리는 속도가 윷놀이에 반영됐다고 추정된다. 때때로 동물 덩치에 비유되기도 한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는 고구려 5부족 전통에서 윷놀이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부여에는 가축 이름으로 관직명을 정했다는 기록에 따라 부족 경쟁을 놀이에 담았다는 의견도 있다.
#윷놀이를 단순히 보면 분명 확률 게임이다. 4개 윷가락을 던져 윗면과 아랫면에 따라 도·개·걸·윷·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윗면이 셋, 아랫면이 하나가 나오는 도와 윗면이 하나, 아랫면이 셋이 나오는 걸은 모두 16분의 4 확률로 등장한다. 25%다. 모두 윗면이 나오거나 모두 아랫면이 나오는 모와 윷은 16분의 1(6.25%) 확률로 나온다. 가장 많이 나오는 개는 윗면 두 개, 아랫면 두 개다. 16분의 6의 확률로 등장한다. 즉 37.5%다.
그러나 실제로 윷놀이를 하다보면 누군가는 윷이나 모처럼 `좋은 경우`를 연달아 던지기도 한다. 같은 편이 연속해서 모를 던질 때 마다 “두모요!” “세모요!” 환호한다. 단순히 16분의 1확률로 모와 윷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윷놀이를 더 이상 확률 게임에 머물지 않게 하는 비밀은 바로 윷가락에 있다. 윗면과 아랫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생긴 경우에만 적용된다. 윷가락을 보면 한쪽면(아랫면)은 평평하고 다른 한쪽면(윗면)은 둥글다. 닿는 순간 면적이 더 넓은 둥근 면쪽이 아래쪽으로 가기 쉽지만 단순히 원통을 반으로 자르지 않기 때문에 무게 중심에 따라 윗면과 아랫면 확률이 달라진다. 윷가락 회전, 던지는 높이 등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장외`를 표시하거나 너무 멀리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깔린 멍석이나 담요도 위아래면의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윷놀이는 `운`에 맡기는 놀이인가. 실제로 29개 지점을 표시한 윷판이 태양이 지나는 황도 28수에 태양을 더한 숫자로 보거나 북두칠성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다. 천문 우주관과 비교돼 점술 등에 활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윷놀이는 능력있는 누군가나 그 팀만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란 것이다. 때문에 가족과 친척들이 잠시나마 바쁜 생활을 잊고 즐겁게 떠들고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신명나는 놀이인 윷놀이. 이번 설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마친 후 시간을 내 윷가락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