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아세안-①한중일 제조업 아세안에서 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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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ASEAN)이 한중일 3국의 제조업 격전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아세안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다. 일본은 지난 40년 간 아세안과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아세안 생산 기지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소비 시장까지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일본 기업들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아세안을 생산 거점으로 삼고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아세안을 활용해 제품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현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1년 일본의 아세안 해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8조6000억엔으로 중국의 FDI 누적액 6조4600억엔을 이미 넘어섰다.

지난 40년 간 일본 기업들은 저임금을 활용할 수 있는 업종 중심으로 투자했지만, 최근에는 전자·자동차·화학 등 기술 집약적 업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도요타·닛산·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중국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에게 아세안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 중국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아세안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태국과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 됐고, 인도네시아에 두 번째 많은 투자를 하는 국가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해 초 일본 기업 CEO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84.5%가 아세안에 생산 시설을 확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중국에 추가 투자할 것으로 대답한 CEO는 40.5%에 그쳤다.

중국도 일본에 질세라 아세안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에 잇따라 가전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에 비해 저렴한 임금을 활용하고, 향후 아세안이 엄청난 소비 시장으로 부상할 것에 대비해서다.

아세안 지역은 중국 수출 전략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면서 주요 선진국들은 중국을 집중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아세안을 우회해 선진국의 보호주의 압력, 수입 장벽 등을 회피한다는 복안이다.

중국 정부는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무기로 중-아세안 인프라 기금 100억달러, 저리신용차관 150억달러 등 천문학적인 자금을 풀고 있다. 중국의 아세안 교역 비중은 지난 2000년 4.3%에서 2010년 11.3%로 크게 늘었다. 중국 기업들이 아세안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향후 교역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아세안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아세안 수출과 교역 규모는 지난 10년 간 각각 연평균 15.7%, 14.1% 증가했다. 특히 싱가포르(326억달러), 인도네시아(296억달러), 베트남(217억달러) 등 3개국은 주요 교역 대상국으로 자리매김 했다.

우리나라가 아세안에 투자한 금액도 지난 10년 간 연평균 26.1%씩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해외 투자금액 중 20% 비중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중국에 비해 존재감이 미약한 게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지원 자금 규모에서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을 뛰어넘기 어렵다. 베트남·인도네시아·미얀마 등 주요 전략 국가를 선별해 우리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은 중국과 달리 아세안을 압도하거나 위협하지 않고, 지역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아세안 국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 지속적으로 협력을 추진한다면 투자 대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백기성 아이엠필리핀 법인장은 “아세안 국가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발전 경험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며 “과거 우리나라의 정책과 제도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한다면, 단기간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아세안에 ICT 산업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을 전수한다면 지역 경제발전에 공헌한다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 제조업 경쟁력도 한 층 끌어올릴 수 있다. 제조업 진출로 구축한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금융·보험·해운 등 서비스 시장에도 발을 뻗을 수 있다.

의료 봉사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고엽제 피해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현지 엘리트 층을 중심으로 이미지 개선 효과를 얻고 있다.

우리 제조업체들은 아세안에 진출해 고용 창출과 성장동력 확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베트남에 투입하고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제 원조 중심으로 투자한 탓에 존재감이 미약했다. 우리나라는 투자 중심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아세안 회원국들 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중국도 자원 개발에 집중 투자한 탓에 현지인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현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이 주로 진출해 아세안 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세안 지역에 한류 열풍으로 형성된 친한국 정서를 적극 활용해 경제 파트너로서 이미지를 높이고, 상호 신뢰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동남아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값싸고 좋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R&D)도 강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한계 기업 중심으로 아세안에 진출했지만, 지금은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나감으로써 내수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

티암 히 잉 아시아개발은행 박사는 “한중일 제조 기업들이 아세안 현지화에 성공하려면 보다 면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한국 내 R&D와 현지 제조업 체제가 유기적으로 얽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지 인력 양성은 우리 제조 기업이 더욱 신경써야 할 숙제다. 일본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제품은 자국에서 개발하고, 범용 기술로 생산 가능한 제품은 중국이나 아세안에서 생산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경만 조성되면 일부 핵심기술을 제외하고는 얼마든지 내보낼 정도로 현지화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 차세대 낸드 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설립하고 있으며,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쑤저우에 LCD 팹을 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최첨단 스마트폰 공장을 2곳이나 설립해 현지 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세안 국가들이 한국 기업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숙련된 인력 확보는 아세안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 제조업이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직원 교육에 적극 투자하고, 현지 교육 기관과 협력하는 한편 산학협력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유학 온 학생을 유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졸업 후 본국에 있는 한국 제조업체에 취직할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중간 관리자 등 고급 인력 확보에 목마른 우리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복균 인탑스베트남 법인장은 “아세안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술을 전수하고, 지역 사회에도 공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현지에서 우리 외교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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