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는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입니다. 운이 아닌 실력이, 연줄이 아닌 연구 열정이 성공을 좌우합니다. 이공계 후배들이 이런 점에 긍지를 갖고 훌륭한 연구과학자의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최근 논문 피인용 횟수 1만건을 넘어서며 세계적인 생명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서판길 UNIST 연구부총장(61)의 얘기다.
서 부총장은 30여년 동안 생체 신호전달 연구에 전념해 온 생명과학의 선구자다.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기본 개념으로 세포 신호전달 원리를 세계 처음으로 규명·정립했다. 그는 생체 신호전달 과정에서 단백질 복합체가 분자 스위치를 중심으로 생체 분자 간에 서로 반응하며 세포의 활성을 정교하게 조절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 연구 결과로 생명 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각종 질병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 부총장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신호전달 단백질 복합체의 구성 요소 간에 유기적 조절이 깨지면 암, 당뇨 같은 질환이 생긴다는 기전을 밝혀냈다.
그가 발표한 265편의 SCI 등재 논문은 대부분 상위 10% 이내 저명 학술지에 실렸다. 구글이 제공하는 과학연구논문 통계에 따르면 이중 18편이 100회 이상 피인용 됐다. 현재까지 총 피인용 횟수는 1만652회에 이른다. 이 논문 피인용 수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인을 통틀어 손꼽을 정도다. 연구논문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지료로 사용되는 `H-인덱스`는 `52`로 국내 의생명 과학자중 최고 수준이다.
끊임없는 연구 열정 또한 후배들에게 귀감이다. 예순을 넘은 나이에도 매년 10여편의 논문을 쓴다. 서 부총장은 “항상 즐겁게 일한다. 어떤 연구이건 즐거워야 잘 된다”며 웃음으로 답했다. 학술적 내용 위주의 딱딱한 인터뷰였지만 사이사이 나오는 그의 유쾌한 농담으로 금세 분위기는 바뀌었다. `조콜로지(농담학)`를 곁들인 그의 강의는 학생 사이에서 유명하다.
서 부총장은 개별 연구 외에도 국제 학술 교류, 과학기술 대중화, 연구 인프라 구축 등 연구기획과 행정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6년 포스텍 연구처장 시절, 전국 대학교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 협의회장을 맡아 국가 연구과제 관리제도 개선과 산학협력의 제도적 기반 구축에 앞장섰다.
2008년부터 4년간 국과위 기초과학진흥협의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1년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IBS) 설립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이력서에는 2001년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시작으로 2007년 과학기술부 이달의 과학자상, 2012년 원로 공로자에 주어지는 생화학분자세포생물학회 `무사`상까지 각종 수상 경력이 빼곡하다.
서 부총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열정을 갖고 후배들과 함께 연구에 매진하고, 보다 나은 연구풍토와 환경 조성에도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