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IT정책의 키워드는 융합이었다. 이제는 IT융합에서 융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방송〃통신〃SW〃HW〃콘텐츠의 융합, IT와 타산업의 융합, IT와 물리적 환경의 융합 등 IT융합은 여러 차원의 개념을 갖는다. 차원별로 주효한 산업전략 및 정부정책이 상이하고, 따라서 다차원적인 접근과 종합적인 구상이 중요하다.

방〃통〃HW〃SW〃콘텐츠의 융합은 하나의 단말기(예:스마트폰), 하나의 매체(예:인터넷), 하나의 통합서비스, 하나의 수직 통합된 기업으로 IT가 융합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IT융합을 촉진하려면 각 IT 간의 인터페이스를 표준화하고, 표준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각 기술이 독립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IT융합에 따른 IT산업구조의 변화도 기업의 수직통합화에 의한 산업 집중과 전문 독립기업들 간의 공생발전 생태계 형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균형발전은 결국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단, 정부는 공정경쟁의 관점에서 망중립성, 수평규제와 같은 보호장치를 제공할 필요가 있고, IT융합시대 이전에 제정된 불합리한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한편, IT융합 촉진을 위한 정부의 내부체제 변화는 관련 부처의 분리〃통합보다는, 관련부처 간 정책기획〃실행프로세스를 융합 관점에서 연계〃통합하는 행정프로세스 혁신을 필요로 한다.
IT와 타 산업의 융합은 제조업 내장형 SW의 수입대체, 제조〃서비스업의 IT기반 경영선진화, SW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구체적인 산업정책적 목표가 있다. 전자기기, 자동차, 국방무기체계 등 모든 제조업에서 내장형 SW가 제품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됐다. 한편 OECD국가 중 한국이 HW와 SW 간의 산업불균형이 가장 심한 나라고, 이것이 향후 한국경제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것도 이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IT융합의 중심이 된 SW의 경쟁력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제고하는 데 있어 정부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SW공급자 중심의 정책에서 SW수요자 중심의 산업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자〃자동차〃조선〃국방 등 주력산업과 의료〃교육〃환경〃콘텐츠 등 지식서비스산업의 단〃장기 SW수요에 직접 연계된 SW 인력 양성, SW 연구개발, SW 창업 및 SW 중소기업육성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SW 기술과 산업별 SW기술의 사용사례(유스케이스)가 급속히, 단절적으로 변화해가는 국제 상황 속에서 수요와 공급의 괴리는 막대한 재정투자 낭비와 중소 SW 기업의 경영실패를 초래할 것이다.
IT융합 관점에서 보면, 아직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SW 산업은 수직통합을 통한 기업집중보다는 국제 생태계 내에서 국내산업의 비교우위를 고려한 소규모 특화〃전문화가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국내 주력수출기업과 중소 SW 기업의 동반성장을 통한 SW 해외진출을 모색해야 한다.
산업구조 면에서는, SW 산업의 생산(SW 제품업체)과 유통(IT서비스 업체)의 균형성장을 통해 건전한 가치사슬을 형성해야 한다. 그룹계열 IT서비스 업체와 재정적으로 열악한 중소 SW 업체로 구성된 현재의 산업구조에서는 SW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SW 가치사슬 복원을 위해서 최근 그룹계열 IT서비스업체의 공공부문 수주제한을 법제화한 것이 첫걸음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 중소 IT서비스기업의 창업, 역량강화 및 기술혁신에 대한 정책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IT서비스 업종이 지식서비스산업의 대표업종이며, 고용창출효과가 매우 큰 업종인 만큼 이제는 정책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
박준성 KAIST 전산학과 교수 june.park@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