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김시중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과학기술계 환경이 나빠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학 기술은 누가 뭐래도 우리 미래를 짊어질 분야다. 그러나 정작 과학 강국을 이끄는 원천 기술을 연구 개발(R&D)하는 연구원들은 `왜 내가 이 일을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김시중 과학기술포럼 이사장은 미래 과학 강국을 위해 과학기술인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북돋아 주는 것이 당면한 지상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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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R&D 비용이 과거에 비해서는 꽤 많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인력 투자 부족, 연구과제의 자율성 부족, 연구과제 중심 운영제도(PBS) 강행 등 여러 문제가 흩어져 있습니다. 과기인이 먹고 사는 걱정과 스트레스에 갇혀있다면 과기계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김 이사장은 1993년부터 2년 동안 과학기술부 장관직을 역임했다. 화학박사이자 장관으로서 과학기술계 역사를 눈으로 지켜 봤다. 김 이사장은 “과기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국가 발전의 사명감을 굳게 만들어주는 정책과 제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과기계 현안의 대표 사례로 정부출연연구소를 꼽았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이 처음 생길 때와 오늘을 비교하면 미션에 차이가 있다”며 “과거에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생산 기술의 메카였지만 이제는 먼 미래를 보는 비전과 목적을 뒷받침하는 원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산업 기술은 독자적으로 연구 개발할 수 있으니 원천기술 중심의 출연연 역할을 키워야 기초과학도 발전하고 연구자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출연연과 대학 협력도 연구자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한 방법입니다. 미래 국가 사업에 대해서 연구원과 대학 교수가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겁니다. 대학 교수는 또 자신이 원하는 분야 연구도 지속할 수 있겠죠. 서로 필요한 것을 연구하고 하고 싶은 것을 연구한다면 기초 연구가 든든해지고 큰 연구 성과가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연구자 자세 변화도 필요하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의견이다. 김 이사장은 “환경 탓도 있지만 지금 과기인은 너무 자기 폄하적인 성격을 가진 것 같다”며 “역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입에 다 떠 넣어 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1995년 장관직을 그만두고 과기인 60명, 정치·경제·예술·언론 분야 각각 10명씩 총 100여명으로 `과학기술포럼`을 만들었다. 포럼이란 단어가 생소할 당시, 전공 분야에 몰두하는 과기인의 마인드를 바꾸자는 취지였다. 정치·경제·인문학·예술 등 사회일반과 소통이 없는 과기계를 안타까워한 것이다. “과기계 의견을 사회에 전하고 사회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세상은 발전해 나갑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과기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포럼 형식도 지정 발표자만 한 명 두고 회원이 자유롭게 토의하면서 의견을 나누도록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매달 열리는 과학기술포럼은 벌써 180회를 맞았다. 지금까지 각 분야 저명 인사나 전문가를 초청해 세상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한지 17년이 지났다. 포럼 당시 50대가 많았던 회원도 대부분 70~80대가 됐다. 과기계 원로가 된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과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배의식과 열악한 환경에서 과기인이 살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인 2세, 3세 아이들에게 과학 발전을 약속할 수도 맡길 수도 없습니다. 과기인의 자부심이 살아난다면 내 자식에게도 이공계를 추천할 수 있겠죠.”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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