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된 9·15 순환정전. 대형 시설물에 설치한 비상발전기만 제 기능을 했으면 순환정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가동을 멈춘 영광 원전 3기로 인해 비상발전기 가동이 더욱 절실해졌다.
한국전력과 한국전기안전공사 등에 따르면 대형 시설물에 갖춰진 비상발전기는 6만2000대에 이른다. 설비규모로는 원전 20기에 해당하는 2000만㎾ 수준이다. 하지만 비상시 실제 동원자원으로 고려하는 1000㎾급 이상 비상발전기(600만㎾) 가운데 가동여력이 있는 것은 60만㎾ 수준이라고 한다.
비상발전기는 지난해 9·15 순환정전 이후 관심을 끌었지만 운영 실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설치 규정만 있고 유지보수나 관리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가동하려 해도 연료인 경유가 준비돼 있지 않아 무용지물이 된 비상발전기가 있는가 하면 설치 후 한 번도 가동하지 않아 비상시에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엔진내부에 불순물이 쌓여 정작 필요할 때 작동을 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실제 올해 초 고리원전 1호기 정비 중 발생한 전원상실건도 작업자 실수로 외부 전원이 차단됐지만 1차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넘어가기는 했지만 일반 건물도 아닌 원전에 설치된 비상발전기가 제 때 기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중요시설 상황이 이 정도니 일반 시설물에 설치된 비상발전기 운영 실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비상발전기는 한 번 가동하면 가동상태를 30분 이상 유지해야 하는데 그만한 연료를 상시 보관하는 곳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한 번 쓸까 말까하는 발전기 작동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기적인 시설관리에 따른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비상발전기를 블랙아웃(광역정전)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한다면 반드시 관련 운영지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운영지침은 강제해야 할 항목과 함께 인센티브 항목도 함께 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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