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통념으로 괘씸죄라는 게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이나 권력자의 의도에 거슬리거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해서 받는 미움을 뜻한다.
상황을 규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상황에서 괘씸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어느 한쪽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될 때 더 절묘하게 작용한다.
예산 국회가 열렸다. 부처별로 내년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예산을 최종 결정하는 자리다. 국회 예산심의 결과에 따라 각 부처의 내년 살림살이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국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장차관을 비롯해 실무 공무원까지 여의도에 총출동하는 이유다.
국회 예산심의는 한정된 국민 세금을 필요한 분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하지만 최근 각 부처와 국회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이런 대의보다는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나 인맥을 통한 예산 살리기 등 부처의 이해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느낌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회의 공무원 길들이기(?)는 오래된 관행처럼 정착됐다.
최근 지식경제부 최고위 공무원의 해외 출장이 줄줄이 취소됐다. 가장 큰 이유가 국회 예산심의 기간에 걸려서다. 자칫 장차관 등이 해외 출장 등으로 예산심의 과정에 참석하지 못하면 `괘씸죄`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다른 부처 공무원은 이전에 모 장관이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가 괘씸죄에 걸려 `된통 당했다`며 이런 전례가 더 조심스러운 상황을 만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모두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는 자리다. 절차적인 자리에 단순히 참석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 시간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게 더 좋은 것 아닌가.
홍기범 전자산업부 차장 kbhong@etnews.com